[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5월 25일 20년 가량 전화를 못했던 누나와 연락이 닿았다. 인맥의 이산가족 상봉이었다. 또 결별한 많은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길 바라며, 이런 저런 지난 과거를 이야기했다. 1999년 그때 내가 일주일 정도 월명동을 방문하면서, 많은 사연을 토로했다고 한다.
“창훈아!! 그때 너가 그랬지? 기억나? 월명동 낙타바위 옆 감나무 밑에서 나를 보며, 누나는 오뚜기같다고, 누나는 욥과 같다고, 말했던 것, 기억나니? 욥은 다시 일어나서 승리하는 오뚜기라고, 죄가 있어서 환란이 오는 것이 아니지만, 어려움에 처해서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나 승리했다고, 그때 너 말이 지금도 뇌리에 많이 남아있어”
잃었던 과거의 기억이 누군가의 설명을 통해 되살아나는 ‘기억의 오뚜기’가 되었다. 내 인생의 격동기에 몇 번 월명동을 다녀갔던 기억이 난다. 대둔산 독수리봉에서 철야기도를 했었고, 많은 고뇌와 번민속에 나는 하나님을 간절히 붙잡았다. 그 누나도 사연있는 인생을 살았었다.
살아 있으니, 지난 세월도 모두 살아 있다. 그것이 참으로 기쁘다. 내 고향의 어머니가 김치를 보내올 때면, 고들빼기와 솔지와 파지와 깍두기와 동치미와 고추장을 한꺼번에 보내왔었다. 자취방에 그것을 쌓으면 누울 곳이 없었다. 그때마다 누나들 집에 나눠줬었다. 내 어머니의 반찬을 맛있게 먹었던 누나들이 참 좋았다. 지나고보니, 그때 그 인연도 참 소중한 보물들이다.
누나의 남편은 나와 마음으로 친한 형이다. 참 착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전, 그 형이 월명동 초입에서 주차위원을 하고 있었다. 살아 있으니 얼마나 반가운 얼굴이던가? 이 세상은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라,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질서를 정돈하는 아름다운 사역을 하고 있으리라. 내 마음이 감동되어, 서울에서 가져온 맛있는 음료수를 꺼내서 “형 드세요”라고 했었다. 내 마음의 표현이었다. 모두 살아 있으니, 지난 모든 것도 살아난다.
욥은 죄때문에 파산한 것이 아니다. 욥은 죄 때문에 화재를 당한 것이 아니다. 욥은 죄 때문에 이혼한 것도 아니다. 욥은 죄 때문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것이 아니다. 욥은 죄 때문에 배신을 당한 것이 아니다. 욥은 죄 때문에 가졌던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다. 욥은 죄때문에 병이 걸린 것이 아니다. 욥은 죄때문에 갇힌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어서 갑자기 불어온 환란의 바람이었다. 누가 알았으랴. 욥조차 몰랐던 그 은밀한 비밀은 오뚜기처럼 욥이 다시 일어나므로, 모든 것이 드러났다.
욥이 오뚜기처럼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잃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것은 창조된다. 나는 그것을 믿음으로 확증한다. 오늘 전화통화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