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어제 편지 멘토링에서 ‘먼지와 관용(寬容)’이란 단어를 발견했다. 관용은 관대하게 용서하는 것이다. 배구(排球) 대회를 개최했는데, 사막처럼 무더운 땡볕에 흙먼지가 날리는데 물을 뿌리지 못한 것이다. 시합이 시작되는 시간에 급하게 물을 뿌렸던 것 같다. 매사에 미리 준비한다는 것, ‘운동’에는 배구공과 운동복과 함께 반드시 무대를 신경써야하는데, 자주 펑크가 난다. 물뿌림은 누가 준비해야할까?
“눈 뜬 자가 사명자다”
몇해전에 정명석 목사님께 편지로 멘토링을 받은 잠언이다. 항상 마음에 품고 다니는 멘토링이다. ‘눈’(目)은 보는 것이다. 보면, 깨닫고 그것을 하게 된다. 어떤 모임이든, 어떤 단체든 눈의 사명을 가진 자가 있다. 눈의 사명을 가진 자는 그것이 보이므로, 그것을 깨닫고 해결할 수 있다. 운동장에서 탁구경기를 하거나, 배구경기를 하거나, 축구경기를 하거나 기타 등등 다양한 운동이 펼쳐진다. 각자 개인은 누구나 운동복을 준비한다. 개인의 눈을 떴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상 운동을 시작하려면 운동장에 먼지가 날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눈을 못 뜰까?
옛날 중국에서 정전제(井田制)를 실시한 적이 있다. 정전제(井田制)는 밭을 井으로 구분해서, 9등분으로 나뉘어진 땅을 8명에게 나눠주고, 가운데는 공동으로 관리해서 국가에 세금을 내게 한 정책이다. 8명이 땅을 받게 되면서 그 책임은 가운데 땅의 관리였다. 다를 이(異)가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공동(共)의 밭(田)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정전제에서 가운데 땅은 국가땅이라는 의미다.
8명은 자기 땅만 관리하고, 국가땅은 누군가 하겠지 하면서 잡초밭을 만들었다. 대부분 그렇게 된 것이다. 내 것이 아니면, 국가 것이라도 남의 것이 되는 것, 인간의 심리다. 그래서 정부는 봉사활동을 생활화하는 교육제도를 마련했다. 봉사(奉仕)는 받들고 섬기는 일로서, 공동체 의식을 갖는 훈련이다. 운동장에 물을 뿌리지 않은 것은 공동체 의식의 부족이 아닐까? 운동장의 물뿌림의 눈을 뜨지 못한 것은 전체를 총괄하는 공동체 의식의 눈을 갖지 못해서가 아닐까?
운동장의 물뿌림 사건은 운동을 시작하기 전이라서 깨어 있지 않으면 늘상 펑크난다. 운동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먼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월명동에서 운동을 한다고 하면, 행사 책임자는 수첩 맨 앞에 “흙먼지 및 물뿌림”이라고 적어 놔야 까먹지 않는다.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먼지가 절대 날리지 않는다. 운동시합이 시작하면 사람들이 뛰어다니면서 흙먼지가 날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방주사를 맞듯이 미리 물을 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너무 일찍 물을 뿌리면 금방 증발될 것이고, 그 시간을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면, 겨울에 함박눈이 쏟아져서 소나무 가지가 찢어지고, 결국 나무가 부러져 죽는다.”
월명동 나무 조경 전문가들이 요즘 전지작업을 하는 이유중 하나다. 지금은 여름이다. 지금의 입장에서 소나무가 신록을 유지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만, 겨울을 미리 내다보고 전지작업을 하는 것이 나무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것, 흙먼지가 날리기 전에 미리 적당한 시점에 물을 뿌리는 것, 죽음이 임박하기 전에 미리 죽음을 준비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 신랑이 도착하기전에 미리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는 것, 긴장의 허리띠를 매야 알 수 있다. 지금 당장 편하고 좋다고 마냥 좋을 수는 없다. 4계절이 오듯이 삶은 시시각각 변한다. 미리 미래를 내다보면서 준비하는 삶이 지혜다.
얼마전, 내가 쓴 글에 대해 ‘전면적 수정’의 요청을 받았다. 3년전 나였다면, 염소뿔처럼 대들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 요청을 멘토링으로 받아드렸다. 내가 못 보는 방면을 보는 전문가이므로, 그 말을 들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니, 나의 신앙 에세이가 ‘가지치기’를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전문가의 날카로운 조언(助言)이 아니었다면, 훗날 내 글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미리 함박눈을 피할 수 있게 가지치기를 한 것이었다.
[한자해석]
관용(寬容)은 관대(寬大)한 용서(容恕)다. 寬은 宀(집)과 뿔있는 산양(萈)이 합쳐졌다. 산양을 집에서 기른다는 뜻이다. 너그러움은 산양을 집에서 기르는 인내심을 동원한다. 寬을 宀과 見의 합성으로 볼 수도 있다. 艹는 20으로 해석한다. 너그럽다는 것은 그것을 20번씩 자꾸 쳐다보고, 관심갖는 것이다. 너그럽지 않으면 어떤 사건을 외면하게 된다. 너그러우면 용서하고, 품어주고, 자꾸 그것을 보게 된다. 혹은, 20배 넓게 그것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너그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