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巡禮)는 예배를 드리러 나아가는 길, 물처럼 질서를 지키면서 흘러가는 일이다. 예배는 군대처럼 반드시 해야할 의무와 내면의 기쁨이 필수조건이다. 물은 물의 길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통행의 질서를 지키면서 흘러 흘러간다. 자유에 대한 통제가 바로 ‘순례’이다. 순례길은 스스로 길을 찾는 것도 있고, 이미 닦여진 길을 따라서 자신의 내면을 닦으면서 나아가는 것도 있다. 순례는 외부의 길뿐만 아니라 음식에도 존재한다.
선미라 기호학 박사는 18일 오후 광화문에서 나가사키 카스테라 빵을 들고 나왔다. 일본 총독부가 군림한 경복궁이 눈부시게 보이는 까페에서, 세종대왕이 근엄하게 응시하는 광화문 근처 까페에서 나가사키 카스테라는 ‘웬지 일본인??’의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인지상정(人之常情). 익숙하지 않은 포장은 과거 일본이 네덜란드와 무역했던 그 나가사키 항구같았다.
나는 1945년에 설립된 이성당 빵집을 좋아한다. 군산에 있는 이 빵집은 빵의 내면과 외면이 모두 알차고, 빵 자체가 인간미로 듬뿍 담겨 있어서 아침 7시가 되면 100명의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아버지가 어린 딸을 무등태워 빵이 나오길 기다리는 곳이 이성당 빵집이다. 이성당 빵집과는 뭔가 색다른 나가사키 카스테라 빵이 앞에 놓였다.
선미라 박사는 다빈치 코드와 연결된 ‘인류 한가족찾기 포럼’에 사회를 맡기 위해서 부산에 다녀왔다. 선미라 박사가 하는 일은 하나의 물건에 감춰진 코드를 분해하는 일, 어떤 면에서는 문화 화학자라고나 할까? 수학으로 본다면 ‘문화적 미분(微分)’에 탁월한 능력자이다. 미분은 나누기이고, 그래서 나눔활동으로서 ‘베풀선 순례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는지도 모르겠다.
순례자는 번호를 싫어한다고 지난 인터뷰때 선미라 박사가 말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선미라 박사는 ‘순례자의 번호’를 말했다. ‘순례자의 번호판’을 듣는 그 순간, ‘그러면 그렇지 순례자들도 사람인데, 번호가 필요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알고본즉, 순례자들이 번호를 매긴 것은 내면적 번호라는 것인데, (나는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인류한가족 울타리로서 1번, 2번……이어져서 마지막 번호까지 하나로 연결하는 번호라는 것이다. 1번과 끝번이 연결되는 지구울타리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선미라 박사는 33번, 12번은 선미영씨이다. 선미영씨는 SNS를 통해서 점심값 7000원 네팔 후원하기 소셜 운동을 전개했는데, 자발적으로 지금도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네팔은 현재 대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서, 주소는 있으나 건물은 사라진 곳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들을 중심으로 네팔 현지에 ‘쌀’을 국제 택배로 후원하는 운동을 전개할 계획, 그 주소지로 쌀이 배달될 것인지……
광화문 창조드림센터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다시 ‘나가사키 카스테라’로 이동했다. 라면 스프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봉지를 꺼낸 선미라 박사는 “이게 일본식 볶음 커피예요. 일본 특유의 커피향을 느껴보세요. 일본인들 식민지 생각하면 밉지만, 일본의 문화정신은 연구해서 배울 필요가 있어요. 모르면 일본을 이길 수 없고, 이기지 못하면 정신식민지로 살 수도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꿈보다 꿈해몽이 낫다고 했던가? 이성당 빵을 떠올리면서 세종대왕이 멋지게 보이는 창조드림센터에서 ‘일본이 밉지만 문화적으로 뛰어나다’는 말에 선미라 박사가 ‘문화소셜 전문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면 스프같은 볶음 커피가 나의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나가사키 카스테라의 문화코드를 이해하자, 음식에 녹아있는 문화코드의 중요성을 다시금 알게 됐다.
“일본 생각하면 밉죠? 그래도 일본이 잘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왜 일본인들은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최고의 선물’로 즐겨 사용할까요? 그 이유는 여기에 있어요. 보세요? 빵 하나를 만들어서 손님에게 도착하기까지 6개 단계를 거치고 있어요. 대단하지 않나요? 일본인들은 빵을 먹는 것과 함께 서비스로 본 것이죠”
나가사키 카스테라는 슈퍼에서 파는 그냥 카스테라와 비슷했다. 우리나라 카스테라는 비닐 봉지에 들어있는데, 일본식 카스테라는 봉지가 밀봉되어 있었고, 그것을 뜯는데 맥가이버 칼이 사용될 정도로 단단했다. 그 안에 무슨 보물이라도 들어있는 듯…. 나가사키가 그려진 겉봉지, 네모상자, 밀폐봉지, 네모상자, 카스테라, 볶음 커피로 구성되어 있다. 볶음커피는 빵과 함께 즐기도록 구색을 맞춘 것.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팔기 위해서 일본인들은 6단계로 구성해놨어요.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먹는 즐거움 못지않게 ‘보는 맛’을 과정을 통해서 느끼게 해놨어요. 이 카스테라는 그냥 빵이 아니고, 과정의 빵이라고 할 수 있죠. 카스테라를 먹기 위해서 포장을 뜯으면서 과정의 즐거움을 통해서 스스로 품격이 높아지게 돼죠”
그랬다. 설명을 듣고보니, 나가사키 카스테라가 그냥 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6단계로 구성된 빵의 순례길을 들어서면서, 6가지 문화코드를 이해하자 마치 종업원이 그 빵을 준비해서 가져온 듯 정성이 느껴졌다. 일본식 볶음 커피는 뜨거운 물에 탔는데도 맛이 즐겁지는 않았으나, 모든 서비스를 포장을 통해서 감춰놓은 일본인들의 음식문화 코드가 대단해 보였다. 일본인들이 밉지만 배울 것은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세종대왕을 보면서, 나가사키 카스테라 5조각을 함께 나눠 먹었다. 맛은 뭐랄까? 달콤하면서 커피향이 진했고, 나가사키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카스테라의 맛에서 이국적인 향이 느껴졌다. 마치 나가사키에 있다는 그런…… 음식문화 코드에 대한 설명을 들어서 더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