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마태복음 3장은 역사적 만남을 기록했다. 바로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운명적 만남이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어머니쪽으로 서로 친척관계다. 세례요한이 6개월 일찍 태어났으니, ‘형’(兄)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미리 ‘주앞에’ 보낸 자가 세례요한이며, 땅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사람은 상대를 파악하고, 인정할 줄 알아야한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혹독한 연단을 받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비리(非理)를 발견하면, 직격탄을 날리기로 명성이 높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으로 ‘오실 메시야가 세례요한인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세례요한은 ‘빛’이 아니고, ‘빛을 준비하는 자’이다.
세례요한의 삶이 연단의 연속이었다면, 예수님은 그보다 더한 연단이 있었을 것이다. 성경에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세례요한을 만난 후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를 한 장면이 나온다. (마태복음 4장) 그것만 보더라도 예수님의 사생애 기간이 쉽지 않았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모두가 세례요한에게 몰려갈 때, 예수님도 그렇게 했다. 그때 세례요한은 사양하면서,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하는데, 어찌 제가 세례를 줄 수 있습니까”라고 한다. 예수님은 “함께 의를 이루기 위함이다”라면서 세례를 받았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공적과 그 사명을 인정하고, 함께 협력해서 의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세례를 받았다.
당시 세례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아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푼다”라고 예언했다. 세례요한이 그렇게 말했다고 마태가 적었는데, 공식적인 문서이므로 마태가 분명 확인해서 적었을 것이다. 안드레와 베드로가 본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다.
4대 복음의 최초 문서는 마가복음이다. 마가복음의 신뢰성은 마가의 위치 때문이다. 마가는 베드로의 비서실장이요, 사촌동생이었다. 베드로와 상당히 각별한 사이였다. 또한 마가는 사도바울과도 각별했는데, 사도바울의 첫 번째 전도여행에서 짐을 버리고 도망간 사건이 유명하다.
마가와 사도바울은 처음엔 불편한 관계였는데, 나중에 바울이 옥에 갇히고 마가를 통해서 협력하게 된다. 마가는 베드로와 사도바울을 모두 두루 알고지낼 정도로 정보의 마당발이었다. 마가는 마가복음 시작부분에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만남을 거론하면서, 해당 사건을 서술했다.
세례를 받고 나오니,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길,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업적을 인정했는데,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사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했다면, 본인의 입으로 했던 말,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푼다”고 했던 그 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 세례를 받았어야하는데, 그런 기록은 없다. 예수님도 세례요한도 모두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사명자인데, 예수님은 세례요한보다 더 높은 사명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의 업적을 인정했는데, 세례요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통해,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설거지할 때 보면, 보다 더 큰 그릇이 작은 그릇을 담는다. 큰 그릇 속에 작은 그릇이다. 사람도 더 큰 사람이 상대를 품는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니, 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더 큰 사명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1차원적 판단이다. 예수님이 더 큰 그릇이어서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이후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았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님도 음성으로 예수님을 인정했는데, 세례요한이 뭐라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진정 깨달았다면, 바로 예수님께 “성령과 불로 세례를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음성을 들었어도 깨닫지 못하니,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One Comment
서정숙
제자들의관계는처음접하는자료
관계사명인데~~
이런부분으로들어갈수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