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에는 먹는 것과 마음의 보람과 성취감과 얻는 것과 나누는 것 등이 있다. 얻음도 낙이고, 나눔도 낙이고, 먹음도 낙이고, 먹지 않음도 낙이며, 버는 낙과 쓰는 낙과 모으는 낙이 각각이다. 달팽이도 키우는 맛과 낙이 있다. 귀잖지만, 돈이 제법 들어가지만 지난 10월부터 6개월 정도 달팽이가 성장하니 제법 잘 키웠다는 생각이 오늘에야 들었다. 그릇에 가두고서 보는 낙만 있었다. 크기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쳐다보고,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키웠는데 지난주에 거금(巨金) 6~7만원을 들여서 다양한 화분의 식물들을 구입해서 달팽이의 서식지로 만들어주고 여러 가지 배경을 연출했더니 이 달팽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저 그릇에 담아서 키우니 그렇게 자란 것이지 식물위에 올려놓으니 공중곡예(空中曲藝)를 하듯이 나뭇잎 앞면과 뒷면을 오고가는 모습은 달팽이로서 ‘기어감’을 ‘날아감’으로 해내는 실력이랄까? 10분동안 쳐다보는 데 어떤 드라마보다 신비하고 재미가 있었다. 그저 더듬이로 더듬더듬 거리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
큰 달팽이를 나무줄기 맨 위쪽 나뭇잎에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이 녀석은 윗면 끝으로 가서 거뜬하게 뒷면으로 몸을 쓱 돌아 눕는다. 이 녀석의 주특기가 이것이다. 아주 옛날 큰 박스안에서 달팽이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박스 뚜껑을 덮어놓으니 꼭 뚜껑에 거꾸로 붙어서 옮겨다녔다. 그때 습관이 제법 몸에 배인 듯 했다. 윗면을 다니는 것보다 뒷면에 붙어서 기어다니는 것이 익숙한 이 녀석은 금새 잎새 중앙부 줄기를 찾아내서 한동안 맴돈다. 마치 산 정상에 올랐으니 자신을 보라는 듯 했다. 내려올 줄 알았는데 이 녀석은 다시 나뭇잎을 한바퀴 돌고 온다. 사람으로 본다면 나무크기 20m가 높는 높이를 손으로 기어서 올라가는 일인데, 달팽이는 그 방면의 달인이다. 달팽이 몸집의 상대적 크기로 모든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작은 크기로 엄청난 넓이를 오고간다는 것은 내가 중랑천을 3~4번 정도 뛰어서 달릴 정도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작은 달팽이는 작은 화분속 나무뿌리안에서 항상 잠을 잔다. 내가 슬그머니 상추잎을 밀어 넣으니 잠에서 깨어나 상추잎위로 올라왔다. 그 상추잎을 그대로 들어서 큰 달팽이가 있는 나뭇잎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는 작은 달팽이도 혼자서 운동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어느때까지 땅에서만 기어다닐 것인가? 더 높은 창공을 향해서 큰 무대로 진출하는 것도 필요하다. 작은 데서 활동하는 것이나 큰 무대에서 하는 것이나 결국 살아가는 방법은 동일하다. 작은 달팽이는 몸을 가뿐하게 움직이면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가장 자리에서 두 더듬이를 두 손을 벌리듯 이리저리 휘젖더니 그 끝에서 계속 맴돈다. 그러다가 다시 중앙부로 돌아갔다. 그때 밑면에서 큰 달팽이가 나무 줄기를 붙잡고 있었고 윗면에서 작은 달팽이가 큰 달팽이와 마주하면서 지나갔다. 이렇게 서로 만나는 것도 힘든 일이다. 사실, 볼 수 없고 더듬어서 살아가는 달팽이들로서 밑면과 윗면에서 만나는 일은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확률이 낮다.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하물며 사람들이 윗층과 아래층에 함께 살아가는 인연이 보통 인연이겠는가? 그저 층간소음으로 시끄럽다고 불평하고 악연이라고 오해해서 그렇지 알고보면 모두 인연이고, 필연이고,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불가능의 확률이 발생한 것이다.
큰 달팽이는 결국 아래로 내려갔다. 히밀라야 산을 등반한 적은 없지만, 나의 어린시절 히말라야처럼 높고 위대했던 말봉산을 등반하고, 하늙과 무척 가까워졌음을 그날 느꼈듯 달팽이도 뭔가 달라진 자세로 줄기를 내려왔다. 거의 일직선으로 내려오는 자세가 1등을 했다는 그런 느낌이다. 해낸 자는 언제나 여유가 있고 자신감이 몸에서 넘친다. 실천은 이처럼 위대하다. 작은 달팽이도 나뭇잎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올라가는데 그것도 묘기같았다. 큰 달팽이는 줄기를 따라, 작은 달팽이는 나뭇잎의 가장자리 모서리로 몸을 움직이면서 달팽이로서 존재감을 나타내는데, 사람도 아슬아슬 모서리를 타고서 살아야할 때가 있다. 떨어지지 않는 법은 그 모서리도 감사함으로 붙드는 것이다. 인생이 항상 평지일 수는 없다. 비탈길도 만나고 가시덤불도 만나고 모서리도 만나고 계곡도 만나고 강물도 만나고 정상도 만나고…. 그렇게 주어진 환경을 따라서 생명력을 발휘하면서 살다보면 어느날 보다 하늘이 가까워진 삶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오늘 달팽이 두 마리를 통해서 슈퍼에서 상추와 배추룰 사왔던 그 동안의 모든 수고가 보람으로 변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