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비평 / 장창훈]=‘우리가 만난 기적’이 끝났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종결됐다. 은행장 송현철과 주방장 송현철과 부활한 송현철은 모두 다른 인물이다. 부활한 송현철은 늘 ‘정체성의 혼란’에 놓였다. 드라마는 ‘부활한 송현철’도 새로운 인격체라고 정의했다. 왜냐면,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기억을 창출하고, 새로운 느낌을 갖고 있으므로 새로운 인격체라는 것이다. 현실적이지 않지만, 이론적 개념의 성립은 가능하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면서, 새롭게 부활한 송현철은 죽게 된다. 죽게 되는 숭현철은 ‘무’(無)로 돌아간다. 무(無)로 돌아간 그 송현철은 ‘기억’으로 남겨지는데, 사실 그 기억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 기시감 등과 연결된다. 미래까지 살았던 그 어떤 존재가 다시 과거로 돌아왔다는 그런 개념이 적용된 것인데, 그래서 미래를 내다보는 예시력이 기억의 흔적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비과적이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관점의 전환이 신선하다.
모두 평화로웠다. 송현철의 가족들, 그러한 갈등과 엄청난 혼돈속에 빠졌는데, 만약 송현철이 죽지 않겠다고 작정했다면, 영원한 평행선으로 현실계는 헝클어진다. (물론 드라마속 현실계이지만…) 모든 시간이 돌아가면서, 기적은 일어난다. 그 기적은 간단하다. 은행장 송현철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기 보다는 젖은 손을 한번 더 잡아주면서 산책을 하는 것, 먼저 기회를 찾는 것, 등등이다.
은행장 송현철은 2번 다시 살아났다. 주방장 송현철의 영혼으로 되살아났고, 시간이 되돌리면서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달라진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다. 이것은 ‘미래를 예상하는 판단력’까지 포함한다. 그렇지 않을까? 극단적으로 싸우게 되면 이혼을 하게 될 것이고, 이혼을 하게 되면 자식들의 양육은 어찌될 것이지,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을 반드시 인식해야한다. 그저 현실의 감정에만 안달복달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주방장 송현철의 아내도 동일하다. TV에서 은행장 송현철이 나오자, 채널을 돌려버린다. 시간이 되돌려지면서 벌어진 첫 번째 달라진 점이다. 그 전에는 부러운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역지사지의 정신을 가지고, 항상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 상대의 가치를 제대로 보는 눈을 가져야한다. 안목(眼目)이 부족하면, 주변의 가치를 제대로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좋은 것을 좋게 못 보면 그때 문제가 발생한다. 계산착오는 늘 혼동을 발생시키고, 가족이 파괴된다. 우리가 만난 기적 드라마는 그것을 알려주고 있다. 사소한 것을 미리 확인하고, 사전에 문제를 해결한다면 훗날 죽음까지도 피할 수 있다. 모든 운명은 사소한 것에서 달라진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자아 정체성’의 소중함도 새롭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