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는 학생들과 함께
[서울교육방송 장창훈 보도국장]=5월 31일 광화문에서 도광(陶光) 김경선 도예가를 만났다. 시민들에게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기인(奇人)이다. 세월호 사건을 기념하는 곳에 있었다. 시민들과 학생들이 김경선 도예가의 신비한 발물레를 쳐다보면서, 발길을 멈춘다. 좌측발은 끊임없이 물레를 돌리고, 두 손은 도자기를 빚는다. 예술가의 숭고한 혼이 도자기에 담기는 그 순간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장면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 진귀한 장면에 시민들은 ‘도예의 예술’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일인지 김경선 도예가를 통해 재발견한다. 박수도 쏟아진다.
그 순간, 도자기 위에서 작은 도자기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 1~2초에 작은 도자기가 분리되면서 시민들은 얼굴에 미소가 꽃핀다. 김경선 도예가는 가장 행복하게 표정짓는 사람이 누군가 둘러보고, 그 작은 도자기를 선물로 나눠준다. “내 도자기”가 된 그 어떤 사람은 ‘나눔의 보물’을 갖게 된 것이다. 신의 손, 도광 김경선 도예가의 진실한 삶의 이야기다.
광화문에서 현재 진행중인 제1회 한중무역 박람회에 참여한 김경선 도예가는 37년동안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몇해전부터 마음속으로 ‘세월호의 슬픈 사연을 작은 도자기로 위로하는 나눔행사를 하고 싶다’라고 소원했는데, 5월 31일 ‘흙도자기 나눔행사’를 하게 된 것이다. 흙도자기는 다화병(茶花甁)이라 불리는 ‘작은 꽃병’의 원형이다. 불에 굽기 전 상태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로서, 말랑말랑한 흙 도자기는 서서히 굳으면서 작품이 된다.
행사가 끝나고, 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37년 도자기 인생 도광 김경선은 ‘도자기처럼’ 깊게 파인 계곡같은 사연이 있었다. 37년 전, 민주주의가 태동한 서울의 봄, 그는 우연히 ‘도자기 훈령병 모집’ 공고를 보고서, ‘살아가기 위한 젊은 날의 열정’으로 도자기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직업 훈련소와 같은 곳, 국가에서 도자기 전문인을 양성하던 곳에 들어가서, 6개월간 도자기를 배웠는데, 37년이 흐른 것이다. 그는 도자기이고, 도자기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분신이 된 것이다.
“저 도자기의 앞과 뒤를 아시는가?”
달 항아리를 가르키더니, 내게 갑자기 묻는다. 도자기의 앞과 뒤를 묻는 질문은 살면서 처음 들었다. 속으로 ‘내가 지금 보는 면이 앞인가’라고 생각하다가, “가르쳐주세요”라고 하니, 그는 “장작 가마에 넣을 때, 불이 있는 쪽이 앞이고, 반대편이 뒤다”라고 말했다. 불이 있는 쪽은 불과 재때문에 면이 거칠고, 반대편은 부드럽다는 것, 그런데 도자기의 본질을 모르면, 앞과 뒤가 바뀌어서 놓여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도자기가 무엇이죠?”
내가 물었다.
그가 잔잔히 말했다.
“도자기는 흙과 물을 결합해 불로 구운 예술작품이죠. 흙과 물과 불의 예술적 만남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으로 정의하면 이렇고, 도자기가 품고 있는 무형의 의미로서 정의한다면, 도자기는 역사입니다.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에서 조선시대 백자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도자기는 그 속이 텅비어 있는데, 사실은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뜬 자가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고, 도자기의 뿌리를 내면에 가진 예술인입니다. 도자기는 한국전통문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이며, 앞으로 가장 오래 보존될 문화입니다. 로켓이 지구를 벗어날 때 그 뜨거운 열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오직 도자기입니다. 로켓의 표면을 세라믹의 도자기로 입히는 것도 도자기의 성질 때문입니다. 제가 발물레로 도화병을 나눠주는 것은 흙속에 도공의 꿈을 담아서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도화병이 학생에게 건네는 그 순간, 누군가는 도예의 꿈을 받고서 훗날 한국전통 도예의 길을 잇는 예술인이 될 것이고, 세계속에 진출하는 도예가가 탄생하길 바라면서 수십년동안 흙도자기 나눔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가 세종문화회관 건물을 가르키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무조건 현대만 고집하는데, 전통을 배제한 현대는 없습니다. 저 세종문화회관도 자세히 보면 기와집 디자인입니다. 처마와 부연의 디자인은 기와집과 같고, 재료와 건축기술은 현대적 요소입니다. 전통적 디자인을 현대화한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그처럼 전통은 현대의 뿌리이며, 둘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도자기도 전통도자기를 알아야만 현대도자기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발물레가 돌아가면, 시민들은 제자리에 고정된 채 십여명이 줄을 늘어선다. 도화병이 만들어지는 시간은 대략 2~3분, 그 도화병에 작은 리본을 그려주고, 매화도 새겨준다. 20~30분을 기다리면서 도자기를 손으로 빚는 행위예술을 직접 관람하는 것이다. 구불구불, 깊은 산속 바위틈에 구부정하게 자라는 소나무는 수백년 생존한다. 잘 생긴 소나무가 나무 짓는데 재료가 되려고, 벌목당할 때 못 생긴 소나무는 수백년 장수한다. 사람들이 알아주나, 알아주지 않으나, 바위를 지켜온 소나무는 결국 ‘바위 소나무 분재’가 되어서 귀한 대접을 받듯이, 전통을 고집하는 예술인은 그 삶이 거칠고 투박해도 결국 예술의 명맥을 잇는 예술의 문이 된다. 도광(陶光) 김경선 도예가는 진실로 ‘예술을 담고 있는 인생 도자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