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신문사 근무했을 때다.
재건축재개발이 한창 붐이 일었고,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전혀 몰랐던 나로서는 ‘재건축재개발관련 신문’이 생소하면서 보람찬 언론사였다. 당시 봉급 130만원, 4대보험이 되었고, 점심값은 별도로 지급되었다. 언론사 기자 봉급으로는 꽤 괜찮은 복지였다. 소방방재신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뒤로하고 택한 곳이기도 했다. (만약, 지금 선택하라고 한다면 소방방재신문이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소방방재신문은 알속실속있는 언론사이기 때문이다)
재건축추진위원회가 뭔지, 조합이 뭔지, 비대위가 뭔지, 재건축과 재개발의 차이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줄여서 도정법, 도시정비법)이 뭔지 도무지 몰랐으므로, 나는 법률 공부하다가 하루가 흘렀다. 그때 S편집국장이 나에게 조언했던 말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S편집국장의 나이가 45세, 나보다 1살 많다.
“장기자, 밖에 나가야지!!! 사무실에 있으면 어떻해!!! 앞으로 출근은 사무실로 하지도 마!!! 그냥 밖에서 살아!!! 기사 마감할 때만 사무실에 들어오도록 해!!!”
정말이다. S편집국장은 사무실에 기자들이 있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놀더라도 밖에 나가서 놀아라는 것이다. 조합에 가서 조합장하고 그냥 대화하고 커피마시면서 있으라는 것이다. 현장에 ‘기사의 보물’이 숨어져 있다는 ‘표지판’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동시에 불안의 그림자가 함께 따라왔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 기사를 쓰는 기자로서 습관이 들여졌다. 책상에서 기사를 거의 쓰지 않는다. 현장에서 스케치한 나의 취재수첩(스케치북)을 토대로 해서 나는 기사를작성한다. 현장은 곧 사실확인의 저널리즘과 같고, 범행현장의 현장보존 증거와도 동일하다. 증거가 있어야 그것을 토대로 논리를 전개하듯이, 현장에 있어야만 기사의 논거는 더욱 굳건한 ‘땅’을 얻는다.
나는 현장에 근무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기업마다 영업사원들도 동일하게 ‘현장’에 근무한다는 사실이다. 조합에 들어가면 언론사 기자들은 “어서 오세요”라고 대접을 받고, 영업사원들은 “왜 오셨어요”라는 푸대접을 받는다. 언론사 기자는 날마다 똑같은 현장을 방문해도 푸대접을 받지 않는다. 출입처가 되기 때문이다. 영업사원은 자주 가면 눈총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와 영업맨의 공통점은 ‘현장’이다.
영업사원이 현장에 간다면서 PC방에서 오락과 게임을 하고, 사우나방에 가서 낮잠을 즐기면서 ‘미팅중’이라고 핸드폰을 꺼놓는다면 그 회사는 발전이 없다. 기자도 동일하다. 현장에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기사가 현실감과 생동감이 넘친다. 마치 ‘회(膾)’를 먹듯 그렇다. 보도자료만 베끼는 기사들은 그저 그렇다.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학교 대표기자들을 교육함에 있어서도 눈만 띄워주고서 학생들이 스스로 하도록 유도한다. 학교 대표기자들은 학교홍보 및 학교밖 지역공동체 홍보를 하도록 기회를 제공받았으므로, 스스로 눈을 띄워주고, 봉사점수와 ‘전자책 혜택’에 대해서 인식을 시켜준 다음에 스스로 하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스스로 하다보면 먼훗날 점점점 전문가가 되어있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언론의 저널리즘과 취재방법’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는 “현장속으로 들어가서 보고 느끼고 기록하고 촬영하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라, 전화해보라, 확인, 확인, 확인을 하라”고 말하겠다. 언론사 기자는 ‘직업을 탐색하는 직업’도 되고, ‘사실을 추구하는 철학자’도 되며, ‘상대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역할’도 된다. 기자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고, 말을 듣고 기록하여 보도하는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