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오면서 어떤 일이 되었을 때는 기회의 새를 잡았을 때이다. 기회의 큰 독수리는 인생가운데 3번 날아오고, 그 독수리를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온 몸과 온 맘을 투자해서 붙잡아야 된다. 그냥 손가락을 까닥해서는 모기도 못 잡는다. 기회의 새가 그러하다.
생활속에 작고 소중한 기회의 참새도 자주 날아오고, 까치처럼 반가운 이러한 기회들은 주변에서 늘상 지저귄다. 카톡카톡하듯 그렇게 기회의 새가 우리를 찾아온다. 기회의 새는 곧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는 기회의 새를 어떻게 붙잡아야할까?
내 삶을 돌아보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내가 그것을 붙잡지 않으면 기회의 새는 금방 날아가 버렸다. 새는 날아가면 다시 날아오지 않는다. 저 너머 소나무에 가서 앉아있는 그 새를 쳐다보면 왜 그때 그 새를 내가 붙잡지 않았을까, 내심 후회도 한다. 사람은 모두가 서로에게 기회의 새로서 살아간다.
기회의 새가 날아오면 반드시 그릇이 되어야한다. 새는 날개를 잠시 쉬게 하려고 나뭇가지를 찾는다. 그처럼 팔을 뻗어서 새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줘야한다. 그것은 새를 위한 것이다. 나무가 만약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서 새의 앉을 곳을 주지 않으면 새는 날아가버린다. 그릇은 물을 담고, 세워진 빨대는 물을 담지 못한다. 담기 위해서는 스스로 비워야한다.
인생은 누구나 잘났다. 단지, 부족한 것을 감추고서 모두가 잘난 것이다. A와 나는 몇년전에 만났다. A는 사회적으로 참 능력이 많고, 인맥도 넓다. A는 늘상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한 자신감에 대해서 나는 부럽기도 하고, 좋아 보였다. 그러나, 그는 늘 ‘주먹’을 쥐고 있는 듯 했다. 내가 뭔가를 주려고 해도 주먹을 쥐고 있으니, 그러한 자신감의 주먹도 때론 ‘손바닥’으로 보여주면 좋을텐데…. 아쉬움이 많았다. A와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만남만 있고 이후 결실이 없어서 여전히 아는 사이 정도이다. 사람은 아무로 실력있어도 협력의 다섯 손가락으로 존재하고, 펼쳐진 손바닥은 투명성과 진정성의 속마음이어서, 물건은 손바닥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하이 파이브’를 좋아한다. 손가락을 활짝 펴면 누군가의 선물을 받을 수도 있고, 손바닥으로 상대방과 손바닥을 마주 칠 수도 있어서다. 주먹은 주먹과 부딪히면 싸움만 일어난다. 누군가 주먹을 쥐면 그냥 손바닥으로 감싸버려야 이기는 것이다. 나는 손바닥이 좋다.
1~10의 한자(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에서 五는 가장 중앙에 위치한 숫자이면서, 손바닥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五가 손바닥을 본떴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상식이다. 사람이 상형문자를 만듦에 있어서 5개를 나타낼 때, 모두가 공감할 그것은 ‘손바닥’ 외에는 없다. 다섯 손가락이 五의 상형인 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다. 단지 오랜 세월 문명의 강물속에서 마모되어 ‘손가락 위치와 글자형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누군가 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부탁할 때가 좋고, 더불어 내가 부탁할 때 그것의 필요성을 알고서 받아주는 사람이 좋다. 15년전에 만난 M누나는 늘 나에게 멘토링을 해줬고, 그러한 인생멘토링은 내 삶의 표지판이 되어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 간혹 M누나는 나에게 많은 ‘요청’을 했었다. ‘이 사진을 새롭게 디자인해보렴!!!’ ‘여기 글자는 사진과 어울리지 않으니 서체를 바꿔보렴!!!’ 이러한 요청은 명령과 지시였고, 나로 하여금 밤샘 철야작업을 하게 했고, 그 덕분에 나는 포토샵 전문가가 되었다. 그때 배운 포토샵 기술은 저널리스트로 살아가는 요즘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처럼 누군가의 부탁은 실상 나의 유익이기도 하다.
나에게 꿈이 있다. 나는 그 꿈을 꼭 이루고 싶다. 나에게 기회의 새로 날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도 기회의 파랑새가 되고 싶다. 손바닥으로 손바닥의 기회를 마주칠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 꿈은 서울교육방송 자체이다.
기회의 새가 오면 머무르는 시간이 잠시 있다. 그때 그릇이 되고, 손바닥을 펼쳐야 새가 잠시 앉게 된다. 기회의 새를 잡는 방법은 오직 그것에 집중하고, 기회의 새를 위해서 그릇이 되어야하고, 손바닥을 펼쳐야한다. 오늘도 나는 기도로서 기회의 새를 마음으로 꼭 붙잡으려고 애썼다. 그때 뇌의 그릇에 담긴 글의 새가 바로 이것이다.
‘기회의 새를 잡으려면 그릇이 되고, 기회의 선물을 받으려면 주먹을 펼쳐 손바닥을 보이라, 손바닥으로 물건을 받는 것이다. 손바닥과 손바닥으로 손뼉을 마주치고, 주먹과 주먹은 싸움만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