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회는 주일마다 식사로 어울어진다. 식사비도 저렴하면서, 맛이 일품이다. 평소 집안에서 쌓은 실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식사 메뉴와 요리까지 자율권을 주고서 여성 집사님들을 중심으로 성도들의 기호식품으로 메뉴를 선정하고, 대략 3개월마다 메뉴가 변경되면서 성도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구수한 된장냄새를 풍기는 어울어짐이 있다. 나는 요리솜씨가 없다보니, 보통 짐꾼, 혹은 잔반정리다. 오늘은 설거지를 맡았다.
웬걸, 식기 세척기가 고장났다. 갑작스런 고장소식은 식사봉사에 참여한 자들의 어깨를 경직시킨다. 빠질 수도 없다. 먼저 식사를 했으니, 꼼짝없이 설거지 자리에 족쇄를 채워져서, 밀려오는 식기들에 숨쉴 틈조차 없었다. 나는 오늘 해병대처럼 식기를 닦아야 했다. 닦아보니, 먹는 속도에 비해 세척하는 속도가 한없이 느리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리 닦아도 식기가 쌓여가는 속도를 당할 수가 없다. 식기 세척기가 있을 때는 물로 헹귄 다음에 세척기 속에 넣으면 완벽하게 세척되는데, 사람의 손으로 닦아야하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선양석 집사님이 설거지 사역을 담당했는데, 교육사업으로 열심히 사는 중년의 남자로서 불평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자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했다. 참 보기에 좋았고, 귀감이 되었다.
먹는 것은 쉽지만, 먹고 남은 식기를 닦는 것도 먹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보면서, 앞으로 교회에서 식사를 할 때는 반찬을 남기지 않고 청결하게 먹어야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였다.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설거지를 했더니, 여자 집사님들이 “손무좀 걸리고, 손가락에 이상이 생긴다”면서 건강관리의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고무장갑을 끼면 속도가 줄어들고, 감각이 무디니 금방 꼈다가 다시 벗었다. 엄지 손가락이 자꾸 아파온 것은 식기를 들고 있는 중력의 무게감 때문이다. 그래서 식기를 싱크대에 올려놓고 퐁퐁으로 쓱쓱 밀어서 닦는 요령을 터득했다. 50개 정도 식기를 닦다보니 자동적으로 손가락이 요령을 익혔다. 지혜는 하면 할수록 크고 작은 분야에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 같다.
밖을 보니, 여전히 식당안에는 성도들이 제법 식사를 하고 있었고, 닦아도 닦아도 줄어들지 않는 식기는 바닥까지 쌓였다. 식기뿐만 아니라 그릇도 따로 있었고, 수저와 제봉도 수북히 쌓였다.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의 한계를 넘어섰다. 엄청난 압박감을 이기는 비결은 ‘식기 하나를 정성으로 닦으리라’는 마음으로 견뎌야했다. 그렇게 선양석 집사와 친구 집사와 몇몇 성도들이 그렇게 설거지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여자 집사님들은 배식준비를 하랴, 혹시 밥을 못 먹은 중학생, 고등학생과 교사들이 있는지, 꼼꼼이 챙긴다. 사람사는 풋풋한 마음이 제법 느껴졌다.
그때다. 교사로 근무하시는 집사님, 공무원으로 활동하시는 집사님이 갑자기 들어왔다. 교사 집사님은 손놀림이 장난이 아니다. 엄청난 속도로 식기를 닦는데 나는 1개 닦으면 그 집사님은 3개를 닦았다. 나는 식기를 헹구는 쪽으로 역할이 밀려났다. 엄청나게 쌓였던 식기는 밥먹는 속도처럼 그렇게 없어졌고, 남은 것은 숟가락과 젓가락이었다. 그때 공무원으로 활동하는 집사님이 고장난 식기 세척기를 이리저리 만지더니, 작동할 수 있게 했다. 식기 세척기가 다시 운행되니, 주방에서는 “와~~” 함성이 쏟아졌다. 전문가는 전문가다. 각각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오늘 식사 사역은 재밌고, 행복하게 흘러갔다.
식기 세척기가 고쳐지니, 숟가락과 젓가락은 슬슬 물에 헹군 다음에 세척기 안에 넣었더니 자동으로 깨끗하게 세척한 다음에 살균까지 해서 나왔다. 순식간이다. 우리는 깨끗하게 씻겨진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분류해서 놓은 일만 하면 됐다. 아~~ 얼마나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는가.
선양석 집사에게 깨달은 점을 물으니, “한끼 먹는다는 것이 장난이 아니고, 먹고 사는 것도 이와 같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 함께 하니 큰 일도 금방 끝났다”라고 감동을 전했다.
오늘 식사메뉴는 일본라면과 마끼와 몇가지 음식이었고, 제법 고급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