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를 받아라”고 하면, 그 어떤 신비한 힘이 작용한다고 믿는다. 기(氣)는 쌀 미(米)가 들어있다. 쌀이 밥이 될 때 나오는 수증기가 곧 氣이고, 밥을 먹으면 나오는 것이 곧 기(氣)다. 기는 곧 에너지다. 사람이 힘을 낸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세포가 ATP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세포호흡은 곧 혈관과 직접 상관이 있다. 경혈(經穴)에서 구멍 혈(穴)이 사용되었지만, 피 혈(血)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피는 곧 모세혈관을 통해서 모든 혈자리를 지나간다. 피없이 살 수 있는 세포는 없다.
KSNS를 배우는 사람들이 ‘경혈자리와 같다’라고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혈자리와 KSNS의 위치가 거의 비슷하다. 언론인으로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하면, 경혈과 KSNS는 80%는 흡사한 것 같다. 엄지 발가락에서 KSNS는 시작한다. 경혈에서는 엄지 발가락을 두뇌로 본다. 절묘한 일치다.
왜 같을까? 그것은 당연하다. 인체를 다루고 있으니 둘은 같을 수 밖에 없다. 경혈은 곧 신경이 다니는 구멍으로서, KSNS는 무의식 신경을 말하고 있으니 같은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단지, 마비된 신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다를 뿐이다. 한의학에서는 경혈을 자극하는 것만 한다. KSNS는 접근 방법이 전혀 다르다. 체형의 본질을 따진다. 침을 가지고 자극하는 것은 ‘만족감’이 부족하다. 엄지 발가락에 힘이 없는데, 언제 경혈을 자극하고 있는가? 그냥 엄지 발가락의 전체를 ‘콱콱’ 눌러서 죽은 신경세포를 깨운다. 흔들어 깨우는 것과 같다. 한의학은 멀리서 자명종의 침을 놓는 것이고, KSNS는 잠자는 사람을 직접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KSNS의 효과가 직접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화기능을 돕기 위해서 한의학에서는 대장혈을 풀어준다. 대장혈은 바로 팔이다. 대장혈을 풀어주면 팔을 휘젖고 다닐 것이다. 결국 대장의 연동운동은 팔의 움직임과 직접 상관있다. KSNS는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근육들의 연결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면밀히 관찰한다. 소장과 대장은 팔과 다리의 굽히는 힘으로 움직인다. 다리를 굽힐 때 배근육이 상하운동을 하고, 팔을 젖힐 때 소장과 대장은 좌우운동을 한다. 인격의 배가 나온 중년의 사람들은 팔을 뒤에서 젖는다. 그러한 팔운동은 대장과 소장의 연동운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만성소화불량은 팔운동의 부족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럴 경우 대장혈을 풀어준다고 해서 팔이 앞으로 휘젓겠는가? KSNS는 해결방법이 전혀 다르다. 소장과 대장을 직접 만져서 근육을 풀어준다. 그러니 효과가 있는 것이다. 뒤로 밀려난 팔은 손가락과 팔목과 어깨 근육을 잡아주면서 앞으로 오게 한다. 효과는 즉방이다.
경혈과 KSNS는 흡사한 것이 많다. 그러나, 해결방법은 전혀 다르다. 모든 체형관리는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다. 한의학은 한의학으로서 독보적인 전통과 논거를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이 KSNS는 한의학을 포함해서 인체의 신경망을 재해석하는 새로운 분야임에 틀림없다.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히 활용한다면 일상생활에 상당히 유익한 인체구조학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