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NS는 무의식 신경계를 지칭하는 의학명이며, 김세연 박사가 정한 명칭이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을 통제하는 자율신경계와는 구분되며, 모든 근육에 연결되어서 근방추의 척수 반사신경과 직결된 신경구조로서, 사람의 걸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데, 무의식 신경계에서 오랫동안 발견되지 못하였다. KSS는 KSNS의 신경계와 그 신경계의 통제를 받는 근육의 작동상태를 점검하는 방법으로 스본과 스도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스본은 스스로 있는 상태를 관찰해서 본다는 의미이고, 스도는 스스로 몸이 치유되도록 도와준다는 의미다. 스스로 본다와 스스로 도운다를 줄여서 스본과 스도라고 한다.
KSS 방법이 매우 쉽게 보이거나, 매우 어렵게 보이거나, 침술의 경혈기법과 비슷해 보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거나….. 여러 가지 말들이 많지만, KSS의 핵심은 상대의 힘을 느끼는데 있다. 침술과 완전히 차별화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 한의사들은 환자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다. 환자가 아픔을 호소하면, 환자의 말에 근거해서 침술을 놓는다. KSS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의 말도 참고하겠지만, 일단은 발가락 10개의 구부리는 힘과 들어올리는 힘을 체크해야한다. 과연 발가락에 힘이 있는지, 없는지, 발가락들의 힘이 각각 어느정도로 힘이 불균형을 이루는지, 오른발과 왼발의 발가락 힘의 균형은 어떤지 그것을 손끝으로 눌러서 느낄 수 있어야한다. KSS의 핵심이 사실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처음 영상을 보고서, 엄지 발가락의 위쪽과 발바닥 안쪽과 다리쪽 인대 등을 누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의학적 접근이다. 한의학은 그렇게 한다. KSS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그곳을 누르는지 이유가 있어야한다. 엄지 발가락에 힘이 없으니까 그 엄지 발가락에 힘을 주기 위해서 압력을 주는 것이다. 압력을 주고 나면 엄지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는지를 확인해야하는데, 힘이 없던 것과 힘이 나온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면, KSS를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김세연 박사의 영상을 보고서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어, 별 것 없네”라고 할 수도 있다. 얼핏 보기에 도구를 활용해서 일정한 부분을 눌러주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렇다. 환자들은 왜 그러한 지압법에 ‘탄성과 감사’를 보내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하나다. 환자 스스로 그러한 지압법으로 통증이 사라지고, 몸의 불균형이 잡혔다는 것을 인지해서 그렇다. 그러한 인지는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그것이 스본이다. 스본은 몸의 정확한 상태, 근육과 신경의 작동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힘은 무형의 존재다. 엑스레이를 통해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힘은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가 작동한다.
본래 작용과 반작용은 뉴튼의 3법칙으로서 만유인력 법칙에 해당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의 모든 구조는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가 설계되어 있다. 힘은 쓰는 만큼 쓴다는 것이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다. 책상을 들 때는 책상의 힘이 나오고, 책을 들 때는 책의 힘이 나온다. 이것이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다. 엄지발가락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어느 정도 힘이 나오는지는 누르면서 충분히 알 수가 있다. 결국, KSS는 환자의 말에 의존하지 않고, 환자의 통증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스본을 통한 관찰과 환자의 반응에 의존해서 환자의 체형을 분석하는 인체구조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 스본의 종류에는 총 16가지가 존재한다. (발톱, 발가락, 발바닥, 발등, 발목, 다리, 허벅지, 손톱, 손가락, 손바닥, 손등, 손목, 팔, 어깨, 머리, 전체 균형) 15가지 스본을 모두 실시해야 환자의 체형이 어떤지 명확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