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정명석 목사님은 새벽예배를 집도하셨다. 변함없이 북극성처럼 그 위치에서 말씀을 전하셨고,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강물처럼 전하셨다. 그 깊이가 내 마음속에 스미었다. 인류 문명이 강물과 함께 태동했다고 하더니, 역시 인생의 영혼은 말씀의 강물과 함께 소생함을 오늘도 확인하였다.
과연 무엇이 중요한가? 정명석 목사님은 “첫사랑을 뺏기면 신랑을 뺏긴다. 부귀영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 현실에 잊으면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살아 있어야 과거의 사연도 기억나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매일,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한다”라고 깊은 말씀을 전해주셨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내 심장이 고동쳤다. 그의 말씀이 참으로 합당하고, 내가 지금까지 믿고 따랐던 바로 그 말씀이며,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보면서 방향을 잡는 선원들처럼, 그는 내 인생의 북극성이며, 진리의 나침반이다. 오늘도 그를 통해 내 삶의 모순과 틀린 각도를 수정하였다. 물이 서서히 식어가듯이, 마음도 서서히 식어간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그 열정이 식으면, 그때부터 어둠이 찾아오고 이스라엘 땅처럼 된다. 이스라엘은 평화의 그리스도를 버림으로, 전쟁의 땅이 되고 말았다. 곤고, 불안, 초조, 공포, 두려움, 절망, 외면, 쓸쓸함이 찾아오는 것은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의 전문가다. 그런데, 그 전문기술을 하나님께서 배우게 하셨다. 전문가를 내게 보내주셔서, 핵심적인 것을 순간 배웠다. 그때 그 순간의 기회가 내 인생의 밑바탕이 되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임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얻을 수 없는 기회를 통해서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론인이다. 언론인이 된 것도, 언론사를 운영하는 것도 내게 주어진 사소한 여건을 통해서 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때 그 사연을 잊을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하나님께서 정보를 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불가능이었다. 나는 한문 전문가이다. 한문 역시 하나님과 사연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고, 정명석 목사님과 편지 소통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한문을 연구하게 되었다. 모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런데, 신앙이 죽으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유익이랴.
그 언젠가, 내 삶이 괴로워서, 기독교의 교회로 소속을 바꾸려고 한 적이 있었다. 마음을 접고, 각도를 틀려고 했던 그 때, “상대적 지옥”이라는 말씀이 떨어졌다. 그 말씀을 듣고서, 진리가 부족한 기독교에 다니게 되면, 날마다 상대적 지옥으로 살게 됨을 알게 되었고, 마음을 다시 새롭게 했다. 그러다가, 마음이 더 낙담이 되었을 때, 정녕코 기독교 교회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서서히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어느날, 경찰이 쳐들어왔고, 나를 집중 조사한 적이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닌 해프닝으로 결국 끝난 사건이지만, 나는 그 사건으로 1년동안 시달렸다. 나는 나중에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서, 하나님의 지분이 90%라는 것을….. 어쩌면 99%일수도 있겠다. 내가 받을 수 없는 것들을 나는 많이 받았다. 언론사, 협회, 출판사, 작가, 시인, 체형관리 전문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시대 사명자로 말미암았으니, 오늘 말씀처럼 고생되어도 생명길을 가야한다는 그 말씀을 따라 지금에 이른 것이 진정 기쁨이요, 행복이다.
국방문제는 하나님께 국밥문제라고 했다. 경제문제도 하나님께는 국밥문제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하느냐의 문제다. 드라마에 보면, 재벌 회장의 자식이나, 부인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면서 산다. 단지, 그 삶이 회장님과 사랑으로 유지되느냐가 관건이다. 사랑이 완벽할수록 그 지분이 커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국방문제를 국밥문제로 해결해주실 수 있지만, 인생의 국방문제, 인생의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신 것은 그 사랑문제가 덜 완벽해서일 것이다. 나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전히 인생은 불완전하고, 그래서 완전의 방향으로 나아가야함을 진정 깨닫고,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니요, 나의 문제이며, 나는 평생 정명석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시대 진리를 가치관으로 삼고서, 생명길을 가야겠다고 더욱 다짐하였다. 편한 잠자리 버리고, 고생돼도 새벽기도를 한 것이 진정 기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