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칭어(尊稱語) 사용하기
“어른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반말하면 안됩니다. 존칭어를 사용하도록 하세요”라고 정명석 목사님이 존칭문화를 교육하셨다.
존칭어(尊稱語)에서 존(尊)은 높일 존(尊)이다. 존칭어가 발달한 한국어는 매우 신앙적이다. 계급사회는 무너졌으나, 언어는 계급이 존재한다. 존칭어는 상대를 높이거나, 자신을 낮춤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존칭어를 쓸 줄 모르는 자는 ‘한국어의 언어감각’이 없는 사람이다. 언어는 짐승과 구별되는 매우 특별한 인간의 능력이며, 한국어는 다른 외국어와 구별되는 차원높은 언어다. 존칭어 덕분이다.
“할아버지 밥 먹어!!”라고 말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언어의 배열이 틀려서 그렇다. 한국어는 언어마다 계급이 존재해서 그렇다. “할아버지, 진지 드세요”라고 공손하게 말해야한다. ‘밥 먹어’라는 단어속에 이미 ‘낮춤과 버릇없음’이 전제된다. 반면, ‘진지와 드세요’에 공손과 높임이 들어있다. 그래서 존칭어법을 생활화해야한다. 존칭어법을 사용하면, 자신의 삶이 보다 겸허해지고, 낮아지고, 상대를 높임으로 자신의 모순을 돌아보고, 실수를 줄이게 된다.
A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6학년 학생들이 한국어 표현법 익히기 운동을 하면서 ‘존칭어 사용하기’를 습관화했다. 친구끼리 편하면 반말을 하다가, 욕까지 나온다. 욕이 나오면 ‘이새끼, 저새끼’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친구끼리도 존칭어를 사용하면 서로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의 관계에는 친함과 존칭이 모두 필요하다. 그 6학년 학생들이 서로 고운말 쓰기 운동으로 높임말을 제법 사용하였고, 평소 친구들끼리도 “요”를 붙여서 대화하게 되었다. 친구 이름에 ‘씨’를 붙여서 부르게 되었다.
수학여행을 갔다가, 친구끼리 싸움이 일어났다.
김민호 학생 : 철수씨가 저를 먼저 툭 치셨어요.
박철수 학생 : 제가 가려고 하는데 민호씨가 비켜주지 않으셨어요.
김민호 학생 : 철수씨가 조금만 기다리시면 되는데, 그렇게 미시면 힘들잖아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박철수 학생 : 저도 몹시 급해서 그랬어요. 민호씨는 급할 때 없나요?
민호 학생과 철수 학생은 서로 부딪혔는데, 반말로 싸웠다면 ‘XX’라고 욕이 나오면서 전쟁이 일어날 상황인데, 존칭어로 말을 하다보니 싸움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비쳐보는 거울이 된 것이다. 이것을 지켜보던 교사들이 몹시 놀라면서, “하하하하” 웃었다고 한다.
존칭어는 이처럼 생활을 어른스럽게 한다. 반말은 욕으로 가는 길목이고, 존칭어는 언어의 금면류관이다. 내가 반말하면, 상대는 반발(反撥)한다. 나이가 어려도 동일하다. 내가 존칭어를 사용하면, 상대도 공손하게 대한다. 상대를 높이면, 상대도 높인다. 결국 반말은 서로를 낮추고, 존칭어는 서로를 높인다. 언어는 곧 말하는 화자의 현주소이다.
교회에서도 가능하다면, ‘님’을 붙이는 표현법을 익혀야한다. “000 목사가 대표기도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000목사님의 대표기도가 있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부드럽다. “다음주 대표기도는 000 장로입니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다음주 대표기도는 000 장로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보다 따뜻하다. 주보에 표시할 때는 ‘님’을 빼도 되지만, 말할 때 ‘님’을 빼면, 말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존칭어를 사용하면, 말하는 화자가 상당히 교양있고, 품격을 갖추게 된다. 언어의 양복을 입고, 언어의 드레스를 입는 것이다.
언어감각은 뇌속에 이미 저장되어서, 스스로 상대를 높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거기에 해당되는 단어들이 배열되어서 표현되도록 뇌는 작동한다. 어렵지 않다. 반말을 한다는 것은 ①친밀감 ②낮춤의 2가지 마음이 결합된 것이다. 존칭어법으로 공손하게 대하면, 상대방은 더 기분이 좋아지고, 이러한 따뜻함은 언쟁이 사라지게 한다.
교회 지도자 모임에서도 지도자가 나이가 많다고 어린 지도자의 이름을 그냥 부르거나, 반말로 낮춰서 말한다면, 그것은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 격식과 품격을 갖춰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 알몸으로 서있는 것과 같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운줄 모르니까 그렇게 반말로 말하는 것이다. 반드시 고쳐야한다. 정명석 목사님의 ‘존칭어 사용 운동에 ‘아멘!!’으로 화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