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人은 亻과 儿과 大로 변형된다. 大는 팔까지 그린 글자다. 亻은 한 발로 서있는 사람, 儿은 걸어가는 사람이다. 人은 두 발로 서있는 사람이다. 人은 인체구조학의 대변인이다.
人은 완벽한 좌우대칭이다. 두 발로 서있는 사람은 균형의 저울추다. 균형이 맞지 않으면 사람은 절대로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인체의 내부는 자동장치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몸무게가 항상 균형을 유지하도록 ‘고유감각’을 감지한다.
人을 인체구조학적으로 설명하면 윗부분은 중추신경계를 담당하는 두뇌와 척추이고, 아래부분은 몸을 지탱하는 두 다리다. 두 다리와 척추를 연결하는 중앙부분은 골반(骨盤)이다. 두뇌-척추-골반-대퇴골-경골과 비골-발-발가락이 모두 표시된 글자가 바로 人이다.
사람이 서있는 것은 두 발이 함께 협력해서 가능하다. 오른발이 왼발에 비해 강하거나, 약하거나, 그러한 것은 오히려 불편하다. 양쪽이 서로 비등비등할 때, 1등과 2등의 차이가 거의 없을 때, 그때 사람은 가장 건강하다. 만약 오른발이 왼발에 비해 월등히 강하면 몸은 기울어진다.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월등히 길면 짝짝이다. 엄지발가락이 있는 발바닥 안쪽이 새끼발가락이 있는 발바닥 바깥보다 월등히 강하다면, 발 자체가 비뚤어진다.
“내가 가장 강하다”고 하는 그 순간, 정말로 그것이 현실로 되는 순간, 그 강함은 약해진다. 이것이 순리다. 태풍의 강함도 선풍기 바람이 약해지듯 점점점 줄어든다. 물청소를 마친 살수차(撒水車)처럼 강함은 서서히 약해지기 마련이다.
人의 깊은 지혜는 3개의 선분이 하나로 합쳐져서 골반 부분에서 무게중심을 이뤘다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 2개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리의 불균형으로 척추까지 틀어진다는 것을 배워야한다. 지배구조는 과거 왕권주의에서나 통하고, 북한의 공산주의에서나 합당하고, 독일 나찌즘의 우월주의에서나 어울린다. ‘독재와 특권’은 제동장치 상실로 파멸을 부른다. 人은 모두 함께 협력하는 삶의 이치를 표현한다.
인체구조학은 ‘상호연결’이다. 모든 결합구조가 ‘상호연결’로 되어있다. 뼈와 뼈가 서로 연결될 때, 근육과 힘줄이 서로 맞물려서 연결하고, 인대가 두 뼈를 상호 연결하고, 신경과 근육과 혈관이 상호 연결해서 협력하고, 피부의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상호 연결되어 활동하고, 근육의 작동은 반드시 ‘주동근과 길항근’의 결합구조가 척추의 반사신경으로 상호 연결된다. 결국 人은 더불어 함께 살아감이다.
누군가 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희망사항을 말하면 나는 기꺼이 길항근으로서 역할을 감당한다. 길항근은 반대방향에 있을 뿐, 사실은 협력근이다. 반면,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압제하면 나는 강력히 대항한다. 이것은 뉴턴이 말한 작용반작용의 자연법칙이다.
언젠가, 어떤 국제행사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마지막 행사였는데, 그 단체장이 무대에 섰고, 왕과 신하들의 모델쇼가 펼쳐졌다. 사회자가 ‘회장님을 위한 특별쇼’를 준비했다면서, 즉석에서 왕을 연출한 모델의 옷을 벗겼다. 왕의 옷과 왕관을 뺏긴 그 모델은 모멸감을 참으면서 무대를 내려갔다. 그 장면을 목도한 나는 그 회장의 내면을 파악했다. 그것은 곧 독재다. 몇 달뒤 그 단체는 엄청난 분란에 휩싸였다.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모멸시키면, 자신도 그렇게 모멸받는 것이 순리요, 진리요, 행한대로 받는 절대법칙이다.
뼈가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활동하면 ‘뼈다귀’다. 뼈다귀 해장국에나 쓰이지, 그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뼈는 부드러운 근육과 정교한 신경으로 연결되어야 그 쓰임새가 생명력을 가진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자만과 우월의 맹점에 빠지지 않기를, ‘나 아니면 안된다’는 자기중심의 늪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가장 강하다’고 했던 항우는 결국 패배했고, ‘나보다 너가 뛰어나다’면서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고 함께 협력했던 유방은 천하를 통일했다. 함께 협력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깊은 지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