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障碍人)은 정상인과 다른 사람을 뜻한다. 너무 초월하거나, 혹은 너무 부족한 그 무엇이 ‘장애’로서 분류된다. 종교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너무 초월하거나 혹은 너무 부족할 때 ‘무시’와 ‘이단’ ‘편파’ ‘매장’을 당하듯 그렇다. 우리가 아는 ‘장애인’(障碍人)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경우이고, 그 밖에도 우리는 생활적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직면한다.
◆무지 무능의 장애를 극복하라!!!
우리나라는 일본을 욕하면서도, 정작 ‘단발령’으로 복귀를 꿈꾸지는 않는다. 일본인들이 조선을 점령하면서 행했던 그 무자비한 ‘단발령’을 생각해보면, 이제 일본이 떠난지 오래 되었으니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인 ‘단발령’의 원본인 ‘상투’로 복위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단발령이 옳기 때문이다. 머리감기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각종 ‘이’와 ‘벌레’가 득실거렸을 것은즉……
잘못된 폐습, 잘못된 문화(인류를 해치는 것들)는 없애야 옳다. 무지는 결코 문화가 될 수 없다. 무능은 예의가 아니다. 실력없음은 스스로 자각하여 실력을 갖춰야한다. 무능한 것이 죄는 아니어도 무능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사회적 죄라고 할 수도 있다. 무능은 차별이 아니어도, 무능을 수동형으로 받아드리는 것은 ‘푸대접’을 받기 십상이다. 모르면 배우는 것이다.
(사)내부장애인협회를 만나면서, 내가 새롭게 배웠던 것은 ‘무능타파’이다. 특히, 장애인협회들이 ‘복지’ ‘복지’ ‘복지’라고 외칠 때, (사)내부장애인협회는 장애인의 기준에 대해서 거론했다. 신체가 멀쩡해도 장애인보다 더 장애를 가지면서 생활속에 불편을 호소하는 ‘비정상적인 정상인들’에 대한 사회적 복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내부장애인협회의 탄생이다.
나는 이러한 주장을 들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글로벌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당뇨병이 왜 장애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장애진단이 되는 곳이 있다. 치매도 마찬가지다. 장애란, 병을 가진 환자로서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많은 병원비가 소요되므로 국가에서 책임지도록 ‘사회적 복지혜택’을 받도록 배려하는 사회장치이다. 감기에 걸렸다고 사회가 책임질 일은 아니지만, 당뇨병이나 심장병처럼 심각한 병은 그 자체로서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사회적 책임이 필요할 것이다.
내부장애인은 겉은 멀쩡해도 속이 병든 사람들을 위한 협회이고, 지금은 SNS시대인데, 누구나 스마트폰을 멀쩡하게 들고다니는데 실상은 ‘전화기’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으니, 이 또한 심각한 지식장애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폴더폰을 소유한 사람들이 나을 수도 있겠다. 사용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없으니까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것은 통신사에서 구매홍보 전략을 펼치니까, 통신료에 녹아져서 누구나 구입할 수 있지만, 이제는 사용의 장애에 걸려 있다. 이러한 심각한 스마트폰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길음종합사회복지관에서 3번째 강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2시간동안 진행되는 시니어 SNS특강은 스마트폰을 구입하고도 스마트폰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스마트한 특강’이다. 강의하면서 정말로 놀랬다. 전화번호 입력하는 것부터 모른다는 것이고, 특히 전화번호 입력하는 것이 사실상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전화번호 입력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쉽게 알려줄 수 있을까, 그게 나의 숙제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앞으로 3개 통신사에게 스마트폰 홍보전략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스마트폰 활용을 위한 교육에도 관심을 갖도록, 교육복지기금을 통신사에게 부과해줬으면 좋겠다. 통신사들이 통신판매법을 위한하면 수백억원의 위압금을 물리던데, 그러한 기금들이 스마트폰 활용을 위한 교육복지 기금으로 사용되면 좋을텐데….. 방송통신위원회야말로 도대체 무얼 하는 것일까? 스마트폰 보급 숫자만 외칠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얼마나 생활이 윤택해졌는지 면밀히 파악해서 스마트폰을 전화기로만 사용하는 ‘SNS장애’를 퇴치할 수 있게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