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물은 바다로 유유히 흘러간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진리는 바다에 적용되지 못한다. 소금 때문이다. 물은 바다로 유유히 흘러서 썩지 않는 영원성을 갖는다. 바다, 그 아름다운 이름이여. 그 속에는 생명의 근원이 담겨있다.
수면은 역사의 기록과 같다. 보여지는 표면은 겉이요, 겉을 걷어내면 내면이 드러난다. 모든 존재는 겉과 속이 있고, 진실은 겉속에 들어있다. 수면속에 물고기가 살아가듯이, 모든 표면은 드러난 일부이다. 언론인은 ‘팩트’를 생명으로 산다고 해도, 그 팩트는 단지 보여지는 현상이요, 겉일 뿐이다. 팩트의 수면속에 살아있는 수많은 비밀을 발견하는 것이 진리를 탐구하는 지식인에게 주어진 어부의 사명감이다.
내겐, 너무 거대한, 그러나 창조주에게는 아주 사소한 어항이 바로 지구다. 우리는 바다를 위대하게 쳐다보고, 그 속에 갇혀있는 물고기들의 삶을 노래하지만, 인생은 실상 중력의 물속에 갇혀있는 생명의 물고기다. 누구도 지구를 떠날 수 없으니, 창조주가 설정한 지구 어항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 양심의 아가미, 영혼의 허파로 오늘을 살아간다.
바둥바둥, 숨쉴 틈 없이 살아보겠다고 오늘도 힘든 숙제의 산을 오르지만, 나는 묵묵히 나의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손길을 요청한다. 인생은 결국 어항속에 존재하는 생명체임을 인정하므로, 창조주의 도움없이 어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으면, 평안이 찾아온다. 신비한 일이다. 그렇게 마음은 하나님의 바다를 향하는 것인가?
내 자신과 세상을 내다보면, 악함이 넘쳐난다. 악(惡)은 한자로 굽은 마음이다. 亞는 굽어진 곱사등이요, 心은 마음이니, 마음이 비뚤어지고 굽고, 삐딱하게 마음 먹은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움켜쥐려고 마음의 주먹다짐을 하는 순간 악(惡)이 생긴다. 善은 羊과 言이 합쳐졌다. 羊은 희생과 순결함이다. 양처럼 말한다는 것은 상대를 위해 배려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소금’이다. 소금이 없다면 바다도 썩는다. 소금이 바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빛과 소금이 되어라”
–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30세에 목회활동을 시작하면서, 제자들에게 전한 설교문이 마태복음에 전해지고 있다. 산상수훈에는 엄청난 진리가 담겨져 있는데, 나는 ‘빛과 소금이 되어라’는 그 구절이 뇌리에 새겨져 있다. 빛처럼 사는 것, 소금처럼 사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비유’는 오묘하고, 모호하다. 비유와 상징은 사람마다 해석의 관점으로 뜻이 변한다. 빛도 그렇고, 소금도 그렇다. 소금을 돈으로 볼 수도 있고, 빛을 영광으로 볼 수도 있다. 과연, 예수님이 전한 근본 본질은 무엇인가? 늘, 나는 빛과 소금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다.
아마도, 어쩌면, 빛은 베품과 나눔만 한다. 소금도 스스로 형체를 없애면서 주변에 맛을 부여한다. 신비한 일이다. 빛과 소금의 공통성은 ‘베품과 나눔’이다. 소금처럼 살아가는 순례자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어서, 세상은 오염될 듯 해도 오염되지 않고 그 정결함을 바다처럼 유지하는 것이리라. 세속에 물들어 살고픈 유혹이 내 곁을 틈탈 때마다 惡을 버리고, 善을 택하기로 스스로 결단하고, 오늘도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하였다. 소금이 되어 살아야겠다고 다시 희생의 마음을 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