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칼럼]=비밀(秘密)의 무게감은 묵직하다. 드라마 백일의 낭군을 통해 보여주는 극한 비밀은 목숨의 쟁탈전으로 이어진다. 아버지의 권력욕에 혐오감을 느낀 왕세자, 모친을 잃고, 모친을 죽게 한 신하를 장인으로 둬야했던 왕세자,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왕세자빈과 합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자유의지였다. 그랬던 왕세자빈도 궁궐은 감옥과 같았다. 왕세자빈도 아버지의 권력욕에 희생양이 되어서 정략결혼을 해야했다. 그런데, 왕세자로부터 사랑도 받지 못하였으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으랴.
그런데, 왕세자빈이 임신을 했다. 즉, 다른 사내의 아이였던 것이다. 장인 어른인 권력자는 왕세자를 죽여야 모든 비밀을 덮을 수가 있고, 무력한 왕은 이러한 은밀한 내막을 알지 못하고, 총명한 왕세자는 모든 비밀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기우제를 다녀온 후에 역적 무리를 청산하려고 했던 것인데, 역공을 받은 것이다. 권력은 감정없는 화살처럼 날카롭게 빠르다. 겨우 구사일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왕세자는 기억을 다시 찾기를 소원하였으나, 모든 측근의 수족이 좌상의 사람들이니, 힘을 쓰지 못하고 늪에 빠져 있을 뿐이다. 踵(발꿈치 종)이라는 암호를 남기고서.
踵은 발 족(足)과 무거울 중(重)이 합쳐졌다.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는 것, 혹은 몸무게를 지탱하는 곳, 걸음걸이는 발꿈치에서 시작한다. 발꿈치가 가장 먼저 땅을 딛고, 발바닥에서 발가락으로 무게중심이 이어진다. 발꿈치는 모든 걸음의 중심축이다. 이 문제를 낸 왕세자는 네모 4개로서 ‘문’(門)을 의미함으로 자신의 일기를 감춘 장소를 표시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극한 비밀을 알게 되는데….. 왕세자빈이 남의 사내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왕세자빈이 그렇고, 더불어 자신의 아버지가 권력을 찬탈한 것이 백성의 민심을 배반하고 강탈하듯 뺏었으니 또한 그렇다. 왕은 권좌에 앉았으나 좌상의 권력을 대신한 것에 불과하니, 이름만 왕일뿐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였다. 왕세자빈의 형국과 흡사하다.
비밀을 안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책임을 져야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비밀이 영원한 침묵이 되길 바라므로, 더더욱 그렇다. 비밀이 드러나는 것은 거대한 충격과 변동이 발생한다. 그래서 비밀을 덮으려는 자와 깨닫는 자는 항상 충돌을 일으킨다. 백일의 낭군님에서도 비밀을 ‘덮음의 기억상실증’으로 비유해서, 자신의 뿌리, 자신의 본질,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역사를 망각한 것도 비밀을 깨닫지 못함으로 자신의 귀한 것을 잃게 됨을 암시한다. 비밀은 알아야 그 정보를 통해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가 있다. 비밀을 모르면, 비밀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 겸비함으로 비밀을 알기 위해서, 비밀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아야한다. 비밀의 존재를 알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고, 비밀의 비밀번호를 알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나를 보필하는 자가 나의 사람이 아니고, 나를 위한다는 모든 사람이 뒤로는 간자질을 했다니….” / 왕세자의 독백
“내가 확인할 비밀이 두렵다. 누가 나를 죽이려 했고, 왜 그 죽음이 묻혔는지….. 그 비밀을 알게 될 때 내가 할 행동이 무엇일지, 나는 두렵다.” / 왕세자의 독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