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다니엘서는 총 12장으로 되어있고, 1~6장은 다니엘이 섬긴 왕들과 얽힌 사연, 7~12장은 다니엘이 받은 이상으로 하나님과 사연이 들어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기도했던 인물로서 포로기간이 언제 끝나는지가 기도제목이었다. 더불어 왜 포로생활을 했는지를 놓고도 기도를 했으며, 그 답은 다니엘서 9장에 자세히 나와있다. 외경에는 다니엘서 13장(수잔나의 누명사건)과 14장(우상 벨과 뱀을 멸한 사건)이 추가로 있다. 외경 다니엘 14장을 보면 다니엘의 사상은 철저하게 ‘신본주의’이며, 절대적 하나님의 사상으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다니엘은 정치인이다. 또한 신앙인이다. 신앙인은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을 통해서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며 살아야한다. 다니엘은 그렇게 살아냈다. 다리오 왕이 전국을 다스릴 지도자 120명을 뽑고, 총리 3명을 두려고 했다. 조선시대 영의정, 좌우정, 우의정처럼 총리 3명을 두고서 전국을 통치하려고 했는데, 다니엘을 최고 수장으로 삼으려고 했다.
포로출신인 다니엘이 전국을 다스리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그래서 다니엘의 뒷조사를 실시했다. 청문회를 하면 과거에 저지른 모든 비리가 들통난다. 다니엘이 그렇게 도마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얼마나 청렴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니엘이 만약 왕들의 눈치를 보면서 부귀영화를 누렸다면 청문회를 통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깊게 묵상해야할 대목이다.
그래서 다니엘을 잡으려고 다리오 왕을 교묘하게 악용했다. 30일간 왕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어떤 신에게도 절을 하지 못하도록 금령을 내리고, 왕의 도장을 찍은 것이다. 왕이 스스로 내린 조서를 바꾸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다리오 왕조차 간파하지 못한 정적의 술수였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조서를 알고서도 본래 했던 신앙의 습관을 그대로 유지했다. 신앙은 이러한 것이다. 자신의 하나님을 섬기고,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빼앗긴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더불어 다니엘은 섬기는 다리오 왕을 위해서도 기도한 인물이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3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 다니엘서 6:10
한국의 기독교는 기복신앙이 많다. 신앙의 본질은 기복신앙이 아니다. 자신의 하나님을 섬기고 대화하면서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왕의 도장이 찍힌 명령이 막을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것이 신앙의 힘이다. 다니엘의 신앙을 본받아야한다. 어떤 단체에 속하든, 어떤 학교에 속하든 다니엘과 같은 인물이 있다면 그곳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번창할 수 밖에 없다. 다니엘처럼 권력에 예속되지 않으면서 그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바른 소리를 하고, 어떠한 비판과 비난에도 도덕적 청렴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절대적 법을 지키며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앙이다.
만약 다니엘이 여자문제가 복잡하거나, 혹은 돈문제에 얽혀서 착복한 부귀영화가 많았다면 청문회를 통과조차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니엘의 명성은 스스로 날마다 하나님앞에 떳떳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정적조차 흠을 잡을 수가 없고, 흠을 잡기 위해서 왕의 조서를 이용했던 것이다. 뻔히 보이는 그들의 덫이지만 다니엘은 자신이 유지해온 신앙의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신앙은 외부의 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들이 왕의 도장으로 사자굴에 봉인하자, 사자굴에 갇힌 다니엘을 보면서 다리오 왕은 눈물을 흘렸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누가 자신을 위하는 사람인지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알 수 있다.
다리오 왕의 도장이 찍혔으나, 그것은 다리오 왕이 꾸민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리오 왕이 꾸민 일이라면 잔치를 벌였을 것이다. 그들은 다리오 왕의 도장으로 굴을 봉인했다면, 하나님은 두려움과 공포로 사자의 입을 봉인했다. 그래서 사자는 다니엘에게 꼼짝을 하지 못한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겠지만 사자같은 인물이 간혹 양처럼 순박하게 변화할 때가 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시면 사자도 뭔가 겁을 먹고서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 비밀은 다니엘만 알 것이다.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무사했다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결국 살아남으로 다니엘이 구출되자, 다니엘은 참소한 자들이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다니엘서 6 / 23
다니엘이 믿고 신뢰한 하나님은 절대적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니엘은 심장이 뛰듯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성경을 묵상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과 자신의 전문분야 일에도 열심을 다했다. 어떤 어려움에도 다니엘은 하나님을 향한 신념을 꺽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도 다니엘이 처한 역경에서 구원의 손길을 베푸신 것이다. 얼마나 강직하고 정직하게,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었으면 왕조차 ‘다니엘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였을까.
“모든 사람들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다니엘 6/26)
권력은 인맥이다. 알고 믿어야 그 인물을 들어서 쓴다.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대통령도 친분이 있고 신뢰가 있어야 행사에 초청하거나 만날 수가 있다.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하나님은 동네 아저씨가 아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창조주요, 영혼의 아버지이며, 모든 권력을 통치하는 절대권자이시다. 그 하나님이 움직이려면, 평소 친분을 쌓고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복하면서 살아야한다. 그것이 곧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