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밝을 명(明) 집 당(堂) 명당은 한국의 풍수지리설이다. 사람이 살면서 부귀영화와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조상을 잘 모시려는 ‘효도’(孝道)에서 시작된 학문이다. 영화 명당은 조승우, 지성이 주연했다. 조승우는 지관, 지성은 흥성대원군 역할을 맡았다. 흥선대원군은 ‘2대 천자지지’(天子之地) 명당터를 찾았는데, 실제로 흥선대원군은 가야산에 있는 곳에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터를 삼았다. 이곳에 묘를 하게 되면 2대에 걸쳐서 왕손이 나오는 권력을 유지하지만, 그 이후에는 왕손이 끊김으로 국가의 명운이 막혀서 절이 세워져서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영화에서는 ‘탐욕’이 국가를 망하게 한다는 주제로 흥선대원군이 절을 불태우면서 결국 남연군을 그곳에 이장(移葬)하고 고종과 순종의 2대 임금을 얻고 식민지 치하로 들어선다는 내용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풍수지리설이 현실로 적용되었다는 거짓말같은 실화로 스토리를 전개했고, 영화에 나오는 장동 김씨는 ‘안동 김씨’를 말한다.
명당의 이론이 갖고 있는 치명적 결함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조상을 명당에 묻는 것은 후손이 잘되기 위함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왕을 좋은 명당에 모시면 왕손이 영원히 잘되고, 그 권력을 누린다고 했는데, 그것을 믿는 자들은 왕의 묘를 몰래 파서 그 위에 자신의 조상들을 모두 암장(暗葬)하고 덮어준 것이다. 겉은 왕릉이요, 속은 왕위에 신하게 있으니 안동 김씨의 김좌근이 그렇게 했다는 가설을 통해서 영화는 시작한다.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다. 묘는 집이요, 묘속의 관은 방이요, 시체는 몸이니, 왕릉에는 2개의 관이 들어가서, 그대로 암매장해서 왕위에 왕이 있는 권력가 안동 김씨가 나왔다는 것이다.
정지관이 제안한다. 김좌근에게, “2대 천자지지에 조상의 묘를 쓰면 누구든 2대에 천자를 얻을 것이니, 성씨가 바뀔 수도 있다”라고. 김좌근이 말하길, “왕이 내 발밑에 있는데, 왜 내가 그렇게 해야하는가?”
실제로 김좌근은 헌종을 발밑에 두고서 천하를 호령했다. 왕보다 높은 신하였는데, 그 힘의 근원을 풍수지리설인 명당으로 해석한 것이다. 김좌근은 왕릉마다 몰래 암장해서 자신의 조상을 왕위에 둠으로 실제로 왕보다 높은 권력을 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암살당했다. 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들이 권력을 얻고 싶어서, 살아있는 아버지를 좋은 명당에 모시려고 죽인 것이다. 명당이 갖고 있는 치명적 결함이 이것이다. 뻔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서 좋은 명당에 모시면 과연 그 후손이 잘된다는 이론, 옳은가.
마지막 장면은 흥선대원군이 정지관에게 “그대는 조상의 묘를 어디에 썼는가. 그대가 복을 누리는 묘터를 썼는가”라고 물으면서 죽여버린다. 명당의 의미가 현실과 다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지관(조승우)은 명당이 불어오는 인간의 탐욕에 염증을 느끼면서 “사람을 묻는 명당보다 사람을 살리는 명당을 찾으리라”면서 백두산 근처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짓는데 독립운동가들에게 군자금을 투자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명당에서 말하는 명당은 흉지가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알아야한다. 흥선대원군이 쓴 묘터는 명당이었으나, 흉지였다. 자신의 권력은 2대의 후손에게 이어졌으나 결국 나라 전체를 일본에게 넘겨주고, 나라가 일본밑에 종속하는 흉지엿다. 안동김씨를 없애려고 왕의 권력을 회복했으나, 나라가 일본에게 넘겨지므로 국가의 운명이 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김좌근의 경우, 자신의 탐욕으로 모든 왕릉을 파헤치면서 자신의 조상을 그곳에 이장했는데, 그렇게 해서 권력의 세도를 누리는 것 같았으나, 암장하듯 암살을 당함으로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고, 자신이 아들에게 죽임을 당해서 땅에 묻히는 운명이 되었으니 결국 암장이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다.
가장 좋은 명당은 백성이 살기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며, 가족이 살기 좋은 사랑의 가풍을 유지하는 것이며, 스스로 하나님께 겸허한 마음으로 신앙의 습관을 갖는 것이다. 명당에 죽은 시체를 옮김으로 잘된다면, 살아있는 사람에게 잘 대해주면 더 잘되는 것이 합리적인 상식이다. 그래서 설경도 육체의 성전과 건물의 성전을 구분하면서 인생이 스스로 생명의 성전이 될 수 있도록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날마다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