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주의 + 이타주의 = 융합주의
[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인생은 3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더불어 함께 잘되길 원하는 사람, 상대를 죽이고 내가 잘되길 원하는 사람, 내가 죽기까지 상대를 망치는 사람. 이렇게 3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나는 어떠한 종류의 사람일까? 거울을 보면서 나를 오늘도 돌아본다. 융합을 바라면서….
2번째 부류, 상대를 죽이고 내가 잘되길 원하는 사람은 대부분 인간형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스스로 아니라고 부인하겠으나, 상대의 것을 배려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정말로 어렵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항상 먼저 말하거나, 내가 원하는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2번째 부류에서 ‘상대를 죽이고’가 과격한 용어이고, ‘상대를 이용해서’라고 하면 쉽게 납득된다.
이기주의(利己主義)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주의로서, 인생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서 살도록 설계가 되어있다. 단지, ‘상대를 죽이고’의 강도가 어느 정도냐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의 사업을 망하게 하거나, 사람을 거짓으로 속이면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약육강식의 짐승과 같다. 그 목적이 어떻다고 해도,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해도, 수단이 피로 점철되었다면 신의 계시는 인간을 떠난다. 성경은 항상 그것을 증언한다. 수단이 피로 물들었어도 신의 계시가 옳다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유대교 대제사장들이 신의 이름으로 예수를 못박았으므로…..
3번째 부류는 정말로 위험하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마치 몽유병 환자와 같다. 세뇌(洗腦)는 사실 상당히 좋은 말이다. 뇌를 씻는다는 의미다. 뇌를 씻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런데, 이념을 계속 강조하면 그 사상에 물들어버린다. 이러한 심리이론으로 다단계 회사가 사람을 포섭해서 이론을 계속 주입하면, 서서히 물들어서 다단계 사상을 옹호하게 된다. 공산주의 사상도 동일하다. 김일성 주체사상은 세뇌를 통해서 주입된다. 김일성 주체사상은 교육의 세뇌이론이며, 대한민국도 역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세뇌교육을 한다.
‘세뇌’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서 그렇지, ‘공교육’이 바로 ‘세뇌’와 같다. 잘못된 이론을 계속 주입하면 그것이 ‘부정적 세뇌교육’이고, 좋은 교육과 정보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긍정적 세뇌교육’이다. 교육의 방법이 문제가 아니고, 무엇을 주입하느냐가 문제이다. 3번째 부류는 세뇌의 부작용으로 발생한다. IS의 자살테러, 복수심에 불타서 애인을 죽이면서 자신도 자살하는 사건, 게임을 현실로 착각해서 발생한 폭력사태, 종교전쟁,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 히틀러의 나찌즘 등등 모두 자신을 죽이면서 상대를 망하게 하는 이론들이다. 이러한 이론이 팽창하면 인류문명은 살 곳을 잃게 된다.
나는 한때 2번째 부류에 속했다. 언론인으로 살다보니, 가난한 작가의 직업군으로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풍요로움을 얻지 못하였고, 펜끝을 칼끝으로 들고서 날카로운 비판 기사로서 돈 되는 사건을 하이애나처럼 찾아 돌아다녔다. 비판기사를 써서 광고수입을 버는 것이 ‘저널리즘’의 이념으로 내 사상을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효과가 좋았다. 그러나, 1번, 2번, 3번 하다보니 나는 언론인의 사명감을 잃었고, 오직 ‘돈의 목적’을 위해서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상대를 괴롭히는 일에만 몰두했다. 나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천만다행, 나는 돌이켰고, 지금은 비판기사는 가능하면 쓰지 않고, 쓰더라도 실명을 빼고서 공익을 위해서 편집해서 기사를 올린다.
인생은 1번째에 속해서 살아야한다. 더불어 함께 잘되길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이것이 공동체속에서 개성체로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상대의 것을 빼앗는 것을 신의 뜻으로 여긴다. 몸은 혈액을 통해서 세포가 에너지를 얻어서 활동하고, 지구 공동체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돈’의 에너지를 얻어서 살아간다. 돈은 곧 육체가 활동하는 근본 에너지다. 자본주의 사회여서 그렇다. 물론, 정치세계는 법으로 움직이고, 문화예술 세계는 명예로 움직이지만, 경제세계는 ‘돈’으로 움직이며, 사람은 경제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으므로, 활동의 근본 에너지는 ‘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돈에 있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철학을 가져야 상호 존재가 가능하다.
이기주의(利己主義)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위할 수 없다. 단지, 이타주의가 없는 이기주의가 문제이다. 극단적 이기주의로서 살인주의(殺人主意)가 사회악(社會惡)이다. 이기주의(利己主義)와 이타주의(利他主義)가 적절히 배합한 사상이 바로 공동체속 개성체를 이루는 ‘아름다운 사회’이다. 과연, 나는 지금 어떠한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