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무신론자인 언론인이 기독교로 개종한 아내를 종교에서 빼내기 위해서 기독교의 허구성을 탐구하면서 점점점 기독교인이 된 실화, ‘예수는 역사다’의 영화 줄거리다. 믿음의 여정이 어떠한 형상인지 진솔하게 보여주면서 심금을 울린다.
서울교육방송은 ‘종교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금일 방문했던 어떤 교회에서 성도의 추천을 받은 영화가 ‘역사는 예수다’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바울은 아나니아 선지자를 통해서 다시 눈을 뜨는 기회를 얻었고, 게바의 도움을 받아서 그리스도를 배움으로 알아간다. 까뮈가 페스트 소설에서 말했듯, 행운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듯이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신앙의 길라잡이가 되어주신다.
‘역사는 예수다’에서 깨달은 것은 아내의 진실한 기도, 아내를 예수님께 뺏겼다는 상실감에서 비롯된 ‘예수님의 존재’를 인식하는 주인공, 그리고 역사적 예수를 찾아서 탐방했던 3개월의 과정이 결국 자신의 인생이 된 기적,
– 사실을 통해서 진실로 나아간다.
– 사실을 입증하면 진실의 눈을 뜬다.
언론인은 사실위에서 말한다. 신앙인은 무엇위에서 사는가. ‘예수는 역사다’ 영화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정의된다. 사실로 입증되어야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부활의 진실을 깨닫는 것이다. 믿음, 그리고 영접이다. 부활의 주님을 확인할 ‘사실’은 과거의 역사에 있어서 그렇다. 부활의 사건은 2천년전이다. 목격자도 이미 죽었다. 조선왕조실록과 같다.
부활의 주님을 입증하는 가장 큰 증거는 여러 가지인데, 첫째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실제로 죽었다는 의학적 관점이다. 둘째로 무덤이 텅 비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제자들의 목격담이다. 제자들의 목격담중에서 여자들의 목격담이 복음서의 사실성을 입증한다. 유대인들은 여자들의 증언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데, 만약 꾸며서 쓸 것이면 유대인이 믿기에 유력한 남자들의 증거로 썼을 것인데, 여자들이 목격했다고 쓴 것을 보면 사실을 확인한 기록이라는 것.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역시 사도바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극적으로 반대했던 인물인데, 산헤드린 국회의원으로서 그 당시 명문집안으로 실력있는 종교 지도자였다. 그가 기존의 권력을 버리고 갑자기 기독교인이 된 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결정적 증거다.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은 곧 부활의 주님을 인정하고서 기도함으로 생활속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형체로서 지금 볼 수 없다고 해도, 그 존재를 믿음으로 기도하면, 생활속에서 기도가 이뤄짐으로 사람이 변화한다면, 그 변화의 근본은 부활의 주님이 행하신 것이다. 사도바울의 회심처럼, ‘예수는 역사다’에서 남자 주인공처럼, 간절한 마음을 기도를 하면 변화가 시작된다.
그렇다. 2천년전 그 역사적 예수가 부활의 주님이 되어서 지금 내게 역사하지 않는다면 믿는 자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예수’라고 우리는 부르지만, 그 이름을 부름으로 역사하시는 근본자가 인생을 지극히 사랑하시니, 믿음의 본질을 알게 해주는 참 좋은 영화인 것 같다. 역사적 예수의 존재는 내 삶이 변화함으로 입증되는 것 같다. 또한, 우연처럼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에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는 것 같다. 영화 초반부에 남자 주인공의 딸이 사탕을 먹다가 기도(氣道)가 막혀서 질식사할 뻔 했는데, 그때 우연처럼 간호사가 그 딸을 구해주면서, 딸의 어머니가 “정말로 운이 따랐어요”라고 말하자,
“운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이죠. 방금 남편하고 다른 식당에 가려다가 여기에 오고싶다는 느낌이 와서 들어왔거든요.”라고 간호사가 말한다. 그리고 그 우연한 사건이 ‘예수는 예수다’는 베스트셀러가 탄생하고, 수많은 무신론자들에게 신앙의 복음이 들어가고 영화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겨자씨같은 우연에서 비롯됨을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