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칼럼에서 거론된 공산주의는 철학적 공산주의로서 학계에서 설명하는 이론에 근거합니다. 창세기에 대한 것은 가족공동체를 전제로 설명합니다.
[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공산주의와 공동체는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는 ‘함께 더불어 나눔’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협력의 공동체’를 막연히 좋아하는데, ‘공산당’이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듯이 싫어한다. 공산주의도 그렇다. ‘우리 모두 함께’라고 하면 정말로 좋아한다. 공산주의의 본질은 ‘함께 더불어’다. 단어의 깊이로 보자면 같다.
성경적으로 공산주의는 베드로가 시작했다. 더 근본적으로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시작했다. 기독교인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공산주의 본질은 아담과 하와의 만남에서 비롯한다.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 사상이다. 물론, 요즘은 부부 독립제 재산관리를 채택하는 가정도 있다고 하는데, 가족 공동체에서는 공산주의 시스템으로 남편이 일하면, 일의 댓가를 가족이 공동으로 분배해서 살아간다.
창세기에서는 가족 시스템을 공산주의로 운영하도록 법을 줬을 뿐, 사회집단을 공산주의로 하라는 성경말씀은 없다. 정치 공동체로서 공산주의 시스템은 사회전체를 공산주의로 만들려는 것이다. 가족의 확대는 국가이니, 가족이 공산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듯 사회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가족은 남자와 여자가 1:1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므로, 매우 특별한 계약이다. 국가는 도대체 누가 누구와 계약을 맺고, 남녀의 사랑만큼 끈끈한 애정을 지속할 수 있는가? 공산주의 시스템에서는 공산당이 남편이고, 민중이 아내의 입장일 것이다.(노동의 관점에서는 민중이 남편이다) 결단코 공산당과 민중은 권력자와 피지배층에 해당하므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남편이 일해서 무조건적으로 아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이 사회 시스템으로는 발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공산주의 시스템은 중세를 장악했다. 그래서 공산주의 시스템이 정치제도로 가능할 수도 있다는 환상이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중세, 혹은 지금의 천주교는 공산주의 시스템을 상당부분 표방한다. 예수님은 어디서도 공산주의 시스템을 말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설교를 자세히 들어보면 계급이 존재하고, 종도 있고, 개성에 따라 능력제를 인정한다. 오전에 일한 사람과 오후에 일한 사람이 모두 같은 일당을 받는 대목을 보면, 일한 능력제로 받음을 알 수 있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각각 1달란트, 5달란트, 10달란트를 맡기고서 각각 수익을 계산한다. 예수님이 사장이 되어서 직원으로 부리는 것이 아니다. 각각 맡겨서 각각 일을 하도록 한 다음에, 각각 정산을 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공산주의 시스템으로 초기 공동체를 운영했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박해받던 그 당시 사도들의 생활여건, 몰려오는 성도들의 식사, 그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유한 사람의 부동산을 처분해서 모두 함께 살아갈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결국 아무도 일하지 않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성서는 증언한다. 베드로가 운영한 그 시스템이 중세사회를 장악한 것이다. 그래서 중세사회는 점점점 추락하였고, 절대권력의 부패와 맞서서 싸운 인물이 바로 루터와 캘빈이었고, 유럽 곳곳에 종교개혁자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넉넉히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그때 태동했다. 로마제국은 무너졌으나, 천주교가 로마제국의 옷을 그대로 입고서 종교적 정체제도로서 16C까지 존재함으로 사람들의 인성은 점점점 말살되었다. 공산주의 사상이 존재해서 그러한 것이다. 공산주의는 다른 의미로 ‘왕권주의’와 맥이 같다. 왕을 대신해서 권력을 배분할 새로운 집합체, 그것이 공산당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권력이 존재하며, 권력을 독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개성대로 능력대로 인한 댓가를 받고서 살아가고, 사회에서는 특별한 빈곤층을 사회제도로서 구제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 시스템이다. 그 본질은 종교개혁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산주의는 그 사상으로 보면 매우 좋은 철학이다. ‘나눔과 협력’은 매우 좋은 가치이듯 그렇다. 그러나, 강제적으로 실현되는 공산주의는 착취와 억압만 있을 뿐이다. 가족 공동체와 친목집단과 봉사단체에는 적합한 이론일 뿐, 사회 전체에 확대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정치철학이 바로 공산주의 시스템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계천을 복원해서 서울시민의 복지를 위해 큰 업적을 이뤘으나, 청계천을 확대해서 4대강을 개발한 것은 가장 실패한 정책이듯이 그런 것이다. 부분으로 성공한다고 해서 전체가 성공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공산주의 이론이 특히 그렇다.
그래서, 나는 민주주의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