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껏 가장 잘 언론사를 선택했다고 추억하는 곳은 ‘효도실버신문’이다. 언론사는 대충 10개 이상은 옮겨다녔던 것 같다. 효도실버신문 다음에 코리아리포스트, 미디어펜, 도시재생신문, 서울교육방송(창간)으로 이어졌다. 효도실버신문은 최성남 대표가 발행인으로 종이신문을 꼬박꼬박 발행하는 곳이다.
만약 지금이라도 나에게 언론사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효도실버신문’도 선택의 물망에 올려놓고서 생각해볼 일이다. 효도실버신문은 전문분야가 특정되어 있고, 복지관과 학교에 출입하면 의외로 인기가 높고 대접도 받았다. 그러나, 내가 효도실버신문을 다녔을 때는 언론인으로서 초년생이어서 지금 돌아보면 많이 헤맸다. 최성남 대표가 많이 챙겨줘서 잘 생활했던 것 같다.
이때도 나는 ‘정의감’이란 명분으로 바르게 살려고 무진장 노력했고, 그러다보니 많이 충돌했다. 여성관련 어떤 협회와 엄청난 다툼을 일으켰는데, 故은방희 회장의 제보를 받고서 취재를 진행했었다. 만약 요즘 그런 제보를 받는다면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조직의 일은 그 조직이 풀어야지, 외부에서 건드는 것은 그다지 유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기자’라는 대접을 받는 만큼, 반대편으로부터 ‘사이비 기자’라는 욕을 얻어먹어야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늘 이중성이다.
여성관련 어떤 협회 수장은 정치인으로서 대단했다. 여성부장관까지 했던 인물이니, 정치인으로서 실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 협회는 국회공천 추천권한까지 있었으니(비례대표) 사회적으로 꽤 알려진 단체였다. 당시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사실에 기초한 제보만을 액면 그대로 믿고서 취재를 진행했었다. 밀어붙이는 성격은 정말로 대단했던 것 같다.
그 협회 회장이 임의로 이사회를 통과하려고, 허위 서류들(위임장)을 토대로 정관을 변경할 찰나였고, 나는 故은방희 회장과 함께 그 현장을 거의 쳐들어갔다. 나중에 전화까지 왔었고, 그리고 인터뷰도 했었는데, 어쨌든 그 여성관련 협회 회장은 나를 무진장 싫어했다. 그리고 엄청난 제보가 다시 들어왔고, 나는 그것을 과감히 보도했다.
문제는 그 여성관련 협회 회장과 최성남 대표가 인맥이 있었고, 그 사건으로 나는 효도실버신문을 그만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냥 효도실버신문에서 찬찬히 실력을 쌓았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당시 월급이 130만원 정도 받았는데 언론인으로서 적은 급여는 아니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봐도 그렇다. 과거에 써놓은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많이 한심한 논리전개가 많다. 그래도 당시 많은 사람들을 내가 인터뷰했고, 복지관 관장과 복지부 장관과 경기도 도지사 등 정치인들과 일반인들과 대학 총장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뭔가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사람을 만나서 그 말의 핵심을 파악해서 글을 쓰다보니, 어느덧 글쟁이가 되어있는 나를 스스로 발견하게 되었다.
효도실버신문을 돌아보면 잊혀지지 않은 사건 하나가 있다. 바로 전국실버하모니카대전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행사를 했었고, 이제 꽤 알려진 규모있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복지부 장관상까지 내려올 정도로 공신력이 있고, 모든 복지관의 하모니카반에서 참석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내
가 효도실버신문에 있었을 때, 복지관에 들렀더니 거의 모두 하모니카를 불고 있어서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무대를 마련하려고 만들었던 것이다. 그때 최성남 대표는 반대했었다. “무슨 하모니카가 인기가 있겠냐? 사람이 오겠냐?”라면서 핀단을 들으면서 만들었는데, 이게 지금은 효도실버신문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잘 되니까 흐믓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