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구멍이 뚫어지게 성경만 보다가, 뭐가 나오겠어요”라고 아내가 구박했지만, 저는 성경만 봤습니다. 친구가 떠나도 성경만 봤습니다.
– 설교말씀 요약노트
언젠가,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말씀이다. ‘눈구멍’은 눈구녁이라고 실감나게 표현하셨다. 사모님이 옆에 앉아계셨는데, “주여~~”라고 미소를 지으셨다. 목사님은 정말로 평생 성경만 연구했다.
내 나이 48세, 내 친구들은 상당한 재력을 가지거나, 권력을 가지거나, 명예를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사회적 직함으로 하자면, 나도 부러울 것이 없는데, 나는 메뚜기처럼 이디야에서 스타벅스로, 스타벅스에서 톰앤톰스로 옮겨다니며, 성경책과 씨름한다. 무엇을 해도, 결국 성경앞에 있다. 유일한 낙(樂)이었던 드라마도 요즘은 너무 밋밋하다. 강력한 말씀의 울림을 경험하고서, 성경을 읽는 맛이 쏠쏠하다. 아메리카노와 비견될 수 없고, 뭐랄까….. 붉은 연시같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2)
내가 참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다. 수면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 그 구절을 읽을 때마다 썰매타는 모습도 생각나고, 수면위로 살포시 걸어가는 신들의 향연도 연상되면서, 그 구절이 몹시 좋다. 수면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처럼, 인생은 깊게 살아야한다. 성경도 깊은 수면위를 운행하듯, 그렇게 읽어야한다. 대충 겉만 읽어서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다. 세밀하게, 역사를 고증하면서, 기도하면서, 성경을 그렇게 읽어야한다. 예수님은 무덤속에 시체로 계셨고, 그리고 부활하셨다. 인생은 그렇게 무덤속에 갇혀서 살아내야만 부활을 하는 것이다. 아멘!!!
기독교 역사는 예수님이 저주의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절정을 이뤘고, 모두 끝났다고 절망할 때, 무덤속에서 장례식을 하고, 동굴을 돌로 막고, 병사들을 파견해서 보초까지 섰을 때, 주님은 부활하셨다. 기독교의 빅뱅이었다. 이후 기독교는 카타콤의 지하동굴에 들어가면서 핍박과 순교로 신앙을 버텼다.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는 권력의 무덤이 되었다. 기독교 역사를 읽어보면, 권력을 잡게 되는 종교의 슬픈 뒷면은 ‘종교 지도자는 구원받기 참 힘들구나’를 인정하게 된다. 내 인생도 뭔가 제대로 풀렸으면, 풀리는 그 사업을 하느라고 시간이 역부족일 것이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이 이집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곳곳이 피라미드 현장이다. 성경말씀을 중심하는 시간을 낼 수 없는 현실 자체가 이집트 고역이다.
언젠가 20부작 드라마를 한꺼번에 본 적이 있다. 보고나니, 하루가 지났다. 눈은 충혈됐고, “아!!”라는 탄식과 함께 “보고나니 레아더라”는 정의가 내려졌지만, 나는 여전히 목말랐다. 그런 내게 말씀의 은혜가 올 줄이야!! 오늘은 예배를 마치고 하늘을 쳐다봤는데,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것만 같았다. 상상의 구름타고 내 마음속에 이미 오셨나?
아무렴, 우주밖 천국까지 15분이면 간다는데, 우리 주님이 함흥차사하실 이유가 없다. 오겠다고 약속하시고 안오실 이유가 없다. 이미 오시고, 우리와 함께 사시는 부활의 주님이신데, 몰랐을 뿐이다. 다른 사람 쳐다보느라, 드라마 보느라, 주님 오신 것도 모르고 그렇게 인생 허비했던 것이다.
[누가복음 24:30]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