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 마리아가 간음현장에서 붙잡혀, ‘사면’(赦免)을 간절히 간구했다. 사면초가였다. 예수님이, 또한 그 여인이 사면초가였다. 성난 군중들은 돌을 던질 율법의 투사가 되어서, 예수님이 선고문만 읽으면, 돌의 개수와 강도만 조절하면 되는 일이다. 그때 예수님이 선고했다.
“죄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그리고, 모두 떠나지 그 여자에게 판결문을 읽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죄인 마리아의 모습에 주님도 계셨던 것이다. 구원주께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메달렸으니, 이런 역설이 어디에 있을까? 죄를 사하러 오신 분께서 ‘사면’(赦免)을 오히려 요청하고 계신다. 용서를 해주실 분께서 용서를 오히려 구하는 미덕을 실천하신다. 의인으로서 죄인이 되셨다.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셨다. 과연, 이런 역설이 어디에 있는가? 옛뱀을 잡으니, 곧 마귀라.
[요한복음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모세는 뱀을 들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뱀처럼 들렸다. 저주의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줌으로 옛 뱀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처럼 우리도 십자가에 메달려서 옛 뱀을 잡을 수가 있다. 마귀가 떠나야 천사가 온다. 마귀가 죽어야 천사가 온다. 그 마귀를 잡는 법은 오직 자신을 십자가에 메달아야한다. 마귀는 자신속에 교묘히 숨어있어서 그렇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남았고, 이집트 군대는 수장됐듯이,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님은 부활했고, 용은 잡힌 것이다. 죽음으로 용을 죽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20장]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