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十)은 두 손을 뜻한다. 한자해석을 보면, 다양한 내용이 많다. 특히 숫자 1~10까지 한자해석은 각종각색이다. 五를 놓고, 하늘과 땅(二)의 중간이니, 1과 `10의 중간인 ‘5’다라고 해석하고, 十은 一을 뚫었으니 ‘10’이다라고 해석한다. 나도 그렇게 해석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숫자는 모두 손가락으로 나타낸다. 상식 아닌가?
一二三四五에서 一二三이 손가락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四는 엄지를 붙인 손바닥을 말한다. 그래서 손가락 4개다. 갑골문자에는 막대기 4개를 올려놓은 것도 있었으나, 엄지를 없앤 손바닥이 4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五는 손가락 5개를 편 모습이다. 八(팔)은 우리말로 ‘팔’과 같고, 나눠주다는 의미도 있으며, ‘8’을 뜻한다. 4+4를 의미한다. 손가락을 모두 펼친 것은 十이다. 그래서 十은 두 손을 펼쳐서 합한 것이다. 두 손을 겹치는 모습이다. 手는 5이고, 手+手 = 十 = 10이다.
마지막 10은 곧 모세의 10가지 재앙과 연결된다. 마태는 예수님을 모세에 비유해서 유대인의 왕으로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곧 어린양의 피와 연결된다. 마지막 장자의 죽음, 그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했다. 그 어린양이 누구인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그 백성이 받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림을 받으시면서 어린양이 되신 것이다.
모세 시대에 이집트에 내려진 마지막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장자, 독생자 예수님을 죽임으로 그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증표를 주신 것이다. 어린양의 피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면할 수가 없다. 살았다고 하나 모두 죽은 영혼들이다. 돈, 권력, 향락, 명예, 예술, 사랑 등등 아무리 취하여도 배부리지 못할 세상 것들이다. 하나님은 ‘내버려 두사’ 세상 것에 빠지게 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십자가의 보혈을 믿지 않는 자들은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음으로 이미 세상의 이집트에 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집트에 있으면, 노예로 있는 자들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나 모두 피라미드의 형틀에 갇힌 부속품일 뿐이다. 피라미드의 꼭대기라고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피라미트 밑이라고 그 희생이 의로운 것도 아니고, 피라미드 내부라고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다. 어린양의 피가 있어야만 피라미드를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다시 찾은 십자가의 본질이다.
十은 두 손이다. 付는 사람과 손(寸)이 합쳐졌다. 손의 역할은 ‘주는 것’이지, ‘뺏는 것’이 아니다. 팔(八)을 봐도 명확히 알 수 있다. 팔은 나눠서 반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당신의 몸을 제자들과 그 믿는 자들에게 기꺼이 주셨다. 생명을 내어주시고, 생명을 구원하셨다. 이것이 거룩한 희생의 십자가이다. 그 의미를 잃으면 짐승의 권력이 지배한다. 십자가는 짐승의 권력이 침탈할 수 없는 구원의 방패다.
수학은 좌표설정이다. +와 -를 명확히 구분해야한다. 방향은 동서남북을 정하는 것이다. 어느 곳이 양의 방향인가? 양(陽)은 곧 태양이며, 양(羊)이다. 어린양 예수님이 가신 곳이 바로 태양의 방향이다. 예수님은 죽음의 방향으로 가셨다. 영광의 방향이 아니라, 저주의 방향으로 가졌다. 명예가 아닌 희생의 방향으로 가졌다. 그 방향에 영광이 있었다. 형벌의 십자가에서 의로움을 얻으셨다. 예수님이 가신 곳이 바로 구원의 방향이다. 신약에서 말하는 좌표는 이것이다. 구약에서 감춰진 생명나무의 길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세상이 보기에 죽는 길로 가셨다. 왜냐면 그 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생명의 길이라서 그렇다. 인생앞에는 오직 두 길이다. 하나는 생명길, 다른 하나는 사망길이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이것이 인생의 난제다. 나는 구원주 예수님이 간 그 길을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