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는 법률책을 끼고 살아야한다. 변호사(辯護士)는 변론의 수호천사다. 辯은 말씀옆에 죄인 신(辛)이 있다. 죄인을 위해 말하는 것으로 달변가를 뜻한다. 변호사는 정말로 말을 잘해야한다. 성경을 주석하듯, 변호사는 법률에 대해 법률해석을 잘해야한다. 그런데, 변호사가 의뢰인의 사건보다 착수금과 성공보수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법률정신이 퇴락하기 시작한다. 그 정신을 잃지 않으면 법률가이고, 그 정신이 없으면 정치인이며, 자본가이며, 사업가이다. 변호사는 오로지 법률과 법률해석으로 살아간다. 의뢰인이 많든, 적든, 그 정신이 새벽별처럼 빛나야한다.
성직자와 신앙인은 성경의 말씀으로 살아야한다. 자본가는 돈으로 산다.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듯, 자본가는 이익을 따진다. 성직자와 신앙인은 오로지 말씀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크리스챤이다. 기독교인(基督敎人)은 그리스도교인이며, 예수님의 통치철학을 신념으로 살아가는 천국시민이다. 곧 성경말씀이 삶의 표준이어야한다. 변호사에게 법률정신이 살아있으려면, 법전을 베개삼고, 친구삼고, 의복삼고, 음식삼아야한다. 그것이 법률가이다. 성직자와 신앙인도 동일하다. 오로지 말씀으로 삶의 기쁨을 삼는 것이 곧 신앙인이다. 信은 믿을 신(信)이다. 믿음은 곧 신앙의 초석이다. 믿을 신(信)에 사람과 말씀 언(言)이 합쳐졌다. 말씀 언(言)은 요한복음 1:1에 나오는 그 로고스이고, 사람에게 합쳐진 로고스를 ‘레마’라고 한다. 날마다 말씀의 로고스를 묵상함으로 삶의 네비게이션이 말씀이 될 때, 그 인생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누가 나를 인도하는가? 돈인가? 그러면, 자본가이다. 율법인가? 그러면 율법중심의 법률가이다. 아름다움인가? 미(美) 추구하는 예술인이다. 신앙인은 오로지 말씀위에서, 말씀에 따라, 말씀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요단강물에서 올라왔을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다. 왕세자로 책봉됐다는 뜻이다.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가? 사람들은 이러한 직책과 직함과 완장을 차게 되면 의기양양한다. 나도 그랬다. 기자(記者)가 됐을 때, 나는 질문의 권한으로 정의로운 전투를 날마다 즐겼다. 그러나, 기자(記者)는 오로지 기록함으로 사실을 탐구하는 직업이다. 그 본분에 충실해야한다.
왕세자는 왕의 명령을 제일 먼저 순종하는 직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고, 효자(孝子)의 길을 걸어가셨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이 계속 나온다. ‘황제의 아들이어든, 재벌의 아들이어든’은 “내가 누군지 알았더라면”의 교만한 마음이다. 내가 누군지 스스로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체성은 2가지다. 내가 나를 정의하고, 상대가 나를 정의하는 것, 내가 나를 정의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앞에 나’를 뜻한다. 그것이 말씀으로 날마다 자신을 찾는 ‘보물찾기 게임’이다.
[설교말씀 요약노트] 희랍어로 로고스가 곧 말씀입니다. 말씀이 내게 오는 것을 레마라고 합니다. 로고스는 보편적 말씀이고, 레마는 개인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로고스가 레마가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에게 나타납니다. 성경말씀은 로고스이고, 그 말씀을 읽을 때 나의 성경말씀이 될 때, 레마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한 오늘 성경본문 말씀이 내게 해당되지 않으면, 로고스의 말씀이 레마가 되지 못했으니, 그것은 설사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존재를 항상 나타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말씀을 알아야합니다. / 설교말씀 요약노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