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왜 예수님인가?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살았다. 인생과 같다. 어떻게 살아야하나, 막막한 인생앞에 예수님은 철학자의 이론이 아닌, 구원자의 대표로서 ‘인생의 길’을 인도하셨다. 그가 구원주인 것은 자신을 구원하고, 따르는 자에게 그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구원함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마귀와 싸움이다. 아담의 위치에서 예수님은 마귀와 싸워서 완전히 이겼다.
이후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 “내가 그리스도이니, 나를 믿어라”고 하지 않았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것이 없다. 베드로가 설령 믿지 않았어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을 것이다.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히지 않았어도, “손잡고 함께 갑시다”라고 하셨을 것이다. 율법과 로마법, 즉 종교와 정치 권력이 밀집한 사탄의 소굴속으로 직접 쳐들어가신 것이다. 마치 여리고성 전투처럼, 예루살렘을 그렇게 보셨던 것이다. 거짓의 권력이 우상이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을 조금만 읽어봐도, 결국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가 나온다. 다른 말로 풀이하면, “나는 이렇게 살았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살았으니, 너희도 이렇게 살도록 하여라”이다. 제자들이 그런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친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천국인가?
예수님이 세우신 ‘지상천국’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죽어 천국’만 생각한다. ‘살아 천국’이 곧 지상천국이며,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서 천국복음을 전파했고, 그 천국을 이루셨다. “이루실 것이다”가 아니다. “이루셨다”이다. 십자가는 곧 승리의 십자가이며, 예수님이 왕권을 차지한 증표다. ‘무덤에서 부활하심’, 그것이 승리의 증표다.
한에녹의 한때두때반때 환산풀이는 거짓말이다. 생각해보라. 구약의 예언은 ‘예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런데, 다니엘서는 AD688을 지칭한다. 예루살렘에 황금칠을 한 황금사원(바위돔)이 기준점이 되어서 1948년 1978년 2023년이 각각 나온다. 그때 누군가 나온다는 것인데, 그래서 어떤 종교 지도자는 1978년 6월 1일 서울에 도착했으니, 한에녹의 예언을 이뤘다고 한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성경해석의 발자취인가?
한에녹의 풀이법이 맞다고 하면, 미운물건은 로마황제, 예루살렘의 황제깃발, 바벨론의 황금신상 등등 엄청나게 많은 미운물건이 세워진다. 황금사원만 미운 물건이 아니다. 남한을 대항하는 북한 괴뢰정권 수립도 미운물건이다. 소련 공산주의도 미운물건이다. 그러한 것은 왜, 다니엘서를 적용하지 않는가?
하나님께 미운물건은 황금사원이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미운물건이다. 이스라엘에게는 영원히 용납할 수 없는 원수의 형상이요, 우상이다. 하나님께는 수많은 미운물건중에 하나일 뿐이다. 하나님의 미운물건은 “옛뱀” 즉, 용이다. 그 미운물건 때문에 아담이 타락했고, 땅문서를 용에게 뺏겼으니, 하나님은 미운물건을 어떻게 해결할까, 항상 고민이었다. 하나님의 원수는 옛뱀이지, 황금사원이 아니다. 예수님이 그 옛뱀을 잡았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 이후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시기까지, 그 기간이 1260일에 해당된다. 이것은 상징의 언어로서 사명기간을 뜻한다. 예수님의 통치는 초림~재림까지다. 재림하시면, 완벽한 통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마패를 보이듯이 각종 환산풀이로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속일 때, 그것은 구원의 보이스 피싱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오시지 않았다. 거짓 사문서에 속으면 안된다. 성경에서 벗어난 성경해석은 사문서 위조와 같다. 전혀 근거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부인하는 자는 모두 적그리스도이다. 십자가는 왕권을 상징하는데, 그것을 부인하니까 예수님의 지상천국을 반대하는 자에 해당되고, 적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고 수없이 강조하고, 죽음을 몇시간 앞둔 시점에서도 발을 씻기면서 “서로 섬겨야한다”라고 수차례 강조하시면서, 자신의 몸을 대속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인격이다. “내가 왕이니, 나에게 복종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그런 권력은 짐승의 권력으로,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가 그렇게 했다. 속으면 안된다. 영혼이 파멸된다.
내가 30년간 이단에 있다가 나와보니, 그 참혹함은 말할 수가 없다. 보이스 피싱을 당한 것보다 더 끔찍하다. 여전히 혼란이다. 폭풍의 언덕은 평온하지 못하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앞에는 이단의 적국에 빠졌으니, 내 생애는 구원받지 못할 지옥이요, 이단의 복음앞에서는 나의 배신은 역시 지옥행이니, 이런 끔찍한 형벌은 가중처벌과 같아서 감당하기가 버겁다. 그래서 진실을 목도하고 그곳을 나온 자들이 상당수 무신론의 향락에 빠지는 것같다. 아!! 공의로우신 재판관, 하나님이시여!! 난제(難題)를 풀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