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할 때 백화점이 신전입니다. 도박하는 사람들의 몰입도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몰입하는 그곳이 예배장소입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신은 어디에 있고, 어디가 신전입니까? 우리가 섬기는 그 우상을 제거하는 것은 고통스런 아픔을 줍니다. 내 안의 거짓된 우상이 깨지고, 기대가 깨지고, 제거되는 그 순간, 하나님이 거짓의 신을 망치로 깨뜨려서 제거한 것입니다. 그 깨짐으로 우리는 기분이 나쁘고,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 설교말씀 요약노트 발췌
방금, 황후의 품격을 시청했다. 몰입도는 K2 소총으로 표적을 겨누듯 흥분의 도가니다. 1시간이 1분같다.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총알같다. 설교말씀 요약노트가 생각났다. 찾아서 읽어보니, 정말로 드라마가 예배이고, 나의 신전이고, 거룩한 예배로서 내가 시청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운로드해야, 우상을 경배하듯 감동이 물결치는 나의 감정이어라. 그리하여, 마음을 평정하면서 말씀을 상고한다.
국민신문고를 한때 운영한 적이 있다. 제보를 받을 목적으로 했는데, 효과가 좋았다. 그런데, 하나의 사건을 취재로 해결할 때 4~5시간이 소요된다. 귀한 시간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무엇을 하든, 인생은 지나간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먼저 독립운동을 하라”는 것이 지상과제이다. 기독교인에게는 “먼저 지상천국 건설”이다. 지상천국 건설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왕되신 예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고, 생각하고, 관심갖고, 신랑과 신부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늦은 나이에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게 됨으로, 신앙의 차원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나님께, 성령님께, 예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내게 있는 우상들을 치우는 마음속 성전청소를 하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내게 책쓰는 소명을 주셔서, 날마다 살아야할 의미가 있다. 그것도 참으로 감사하다.
30년 머물렀던 곳에서 내가 쓴 모든 칼럼이 감동을 주는데도, “모두 덮어라”고 해서, 덮었다. 그곳을 나왔더니, 이제는 비판하는 글들에 대해서 “쓰지 말라”는 요청이 들려온다. 비판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다. 성경에 근거해서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로서 신앙칼럼을 쓰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교황이 성경해석은 할 수 있어도, 성경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고 말한 루터처럼, 성경해석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진리는 오직 성경속에 있는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므로 ’교리‘를 비판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맹목적 신앙으로 교리를 맹신하는 것이 신앙인의 바른 자세는 아니다. 비트코인 가격만 하더라도 1600만원까지 치솟다가, 400만원으로 떨어졌다가 1천만원으로 올랐다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마음이랴!! 신의 뜻은 사람의 행함에 따라 이리저리 옮기신다는 것을 정녕코 알아야한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사람의 행위에 따라 촛대를 옮기기도 하고, 면류관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신의 자유요, 자비요, 심판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조정할 수는 없다. 설교말씀 요약노트를 다시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 얼마나 복된 나의 중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