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사건후, 예수님은 우측 강도에게 “낙원에 가자”라고 말씀했다. 누가는 그것을 기록했다. 이단들은 그 구절만을 부각하면서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했지만, 낙원에 갔다. 그래서 다시 오신다고 한 것이다. 낙원은 천국 밑이다. 모세가 가나안에 가지 못했듯이, 예수님은 천국을 완성하지 못했고, 중간정도의 낙원만 만들었다(원리강론)”라고 설명했다. 나는 그것을 믿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국문과 출신이라고 생각한다. 5천권 넘게 전자책을 출간하고, 100권 넘게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한자분야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개인 수필집으로 출간한 도서만 해도 수백권에 달하고,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니, 나를 국문과 출신으로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기계과 출신이다. 국민대 기계설계학과 91학번이다. 내가 쓴 글만 보고, 각자 판단한 것이 이렇게 틀리다. 오류는 이와 같다.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 태양이 도니까 태양이 돈다고 말하는 천동설이 틀렸듯이, 지구가 도는 것이 아니지만 지구가 돈다고 말하는 것이 맞듯이, 진리는 근본을 따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낙원에 가자”고 했으면, 그것은 낙원에 간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천국복음을 전했는데, 천국복음을 이루지 못했다”라고 판단하면 안된다. 그것은 다시 본질을 따져봐야한다.
성경의 단편적인 단어 하나만을 가지고 전체를 뒤짚는 해석법, 이것이 성경해석의 사기꾼이다. 성경은 이러한 부류를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라고 지칭했다. 2천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에 별의별 이단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발생했다. 성경속에서 ‘로마 황제’는 666으로 지칭되는 악의 표상이다. 로마황제도 멸망당했는데, 하물며 이단들이랴!! 결국 물러날 멸망의 일본군대일 뿐이다. 멸망의 히틀러 군대들일 뿐이다. 멸망할 용과 짐승의 잔당일 뿐이다.
예수님의 어떤 제자도 ‘낙원과 천국’을 다르게 구분하지 않았다. 특히 복음서의 마지막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고, ‘왕권’을 얻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국복음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외쳤고, 부활후에도 ‘복음을 증거하라’고 했다. 그 복음은 천국복음이다. ‘낙원에 가자’고 해서, 낙원복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천국복음이니까, 복음서를 기록해서 제자들은 천국복음을 외친 것이다. 제자들이 천국복음을 외쳤으니까, 복음서에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기록한 것이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왕권을 증명하는 팜플렛인데, 천국복음이 아니면 그것을 기록할 이유가 없다. 이것은 상식중 상식이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어이없는 나열이지만, 천국과 낙원을 헤깔리는 사람은 정말로 낙원이 천국보다 못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렇게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
나의 친누나는 OK라고 하면, PK로 기록한다. 정말로 그렇다. 사과를 쓰라고 하면 APPLE라고 써야하는데, AOOLE로 쓴다. 나의 아버지가 집에서 친누나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O와 P를 거꾸로 가르쳤고, 아버지를 절대 신뢰한 친누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반복에 반복에 반복을 해서 아버지가 원하는 완벽한 우등생이 되었으니, MNPOQ라고 친누나는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인지했다. O를 ‘피’, P를 ‘오’로 인식한 친누나는 중학교 들어가서 P와 O를 바꾸는데 3년이 넘게 걸렸다. O와 P를 반대로 알고 있는 한국인은 나의 친누나가 유일할 것이다.
알파벳도 이러한데 하물며 십자가랴!! 십자가는 승리의 표징으로, 용을 잡은 결정적 사건이다. 십자가로서 용은 갇혔다. 이집트 군대가 홍해바다에 수장되었듯이 옛뱀은 무덤속에 완전히 갇힌 것이다. 홍해가 갈라지자, 이스라엘 백성이 먼저 그곳을 지났고, 용의 깃발을 들고 쫓아온 이집트 군대는 홍해바다에 수장됐다. 그렇게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과 용이 함께 메달렸고, 무덤에 함께 갇혔고, 예수님만 부활한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의 본질이다. 저주의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의 세상적 의미가 그러한 것이고, 옛뱀이 볼 때는 십자가는 정말로 끔찍한 사망의 십자가였다. 반면, 하늘편에서 볼 때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였고, 승리의 면류관이었다. 용을 십자가로 죽였으니, 그때부터 이 땅은 하늘의 것이 되었다. 그래서 지상천국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N과 S가 정말로 헤깔린다. N을 ‘남극’으로 처음에 잘못 암기하면서 발생한 오류다. N은 ‘남’의 N이라고 생각했고, S는 북을 오해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인지하고서 물리시험을 봤는데, 이상하게 자꾸 틀렸다. 어느날 가만히 따져보니 N은 북을 의미했고, S는 남을 의미했다. 노쓰 코리아는 북한이다. 사우쓰 코리아는 남한이다. 한동안 나는 north korea를 남한으로 알고 있었다. N을 ‘남’으로 잘못 인식된 NORTH가 나를 헤깔리게 한 것이다. 나는 요즘도 이것이 헤깔린다. 이렇게 잘못 알게 되면 평생 고생이다. 서울교육방송은 교육방송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서울교육방송을 보고서 “EBS”라고 인식하는 자들은 확인도 하지 않고 단어만 가지고 서울교육방송을 오해한 것이다. 나는 누군가 내게 “EBS 국장님이시죠?”라고 하면, “아니요, 서울교육방송은 EBS와 전혀 달라요. 이름만 비슷할 뿐이죠. 전혀 달라요, 서울교육방송은 서울교육방송입니다.”라고 말한다. 그처럼 ‘낙원’만 가지고, 천국복음을 ‘낙원복음’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복음서의 전체 맥락을 통해서 ‘낙원과 천국의 상관관계’를 따진 후에, 스스로 생각이 옳은지, 틀린지, 판단해야하고, 그러한 정보를 믿을지, 거부할지 판단해야한다.
‘낙원’만 보고서, “예수님은 낙원급 구원만 이뤘다”라고 판단하면, 복음서의 기록을 부인하는 것이다. 복음서는 분명하게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고 증거하고 있다.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마태복음 4:23]
예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낙원’은 곧 ‘에덴동산’을 뜻한다. ‘낙원’은 성경에서 2군데 나온다. 1번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 말씀, 다른 1번은 계시록에서 생명나무가 있는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계시록 2: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내가 30년 있었던 그곳은 ‘용’(龍)을 정말로 좋게 인식한다. 그렇게 교육을 받으면 그러하다. 용은 곧 옛뱀이며, 사탄의 상징물이며, 십자가로서 죽어야할 악마다. 그런데 용(龍)이 상당히 좋게 인식되어 있다. 권력의 상징이며, 승리의 표시로서 ‘용’(龍)이며, ‘루시퍼도 루시엘’로서 좋게 인식한다. 얼마나 무서운가? 단지, 루시퍼는 잡혀서 죽었고, 용(龍)은 본래 좋은 영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의 통치철학은 용의 권력이다. 용의 권력은 곧 계급주의요, 노예제도요, 굴종의 지배요, 왕을 향한 절대충성이요, 배신하면 멸망이다. 용(龍)과 양(羊)의 위치를 바꾸면 이렇게 무서운 사상의 변종이 발생한다.
사춘기때 좋아하고, 대학교 동창인 나의 친구는 번데기를 정말로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번데기를 너무 싫어한다. 한번은 내게 번데기를 보내왔는데, 먹지 못했다. 번데기는 ‘벌레’처럼 보여서 그렇다. 나의 인식이 그러해서 그런 것이다. 번데기에 대한 인식관이 이렇게 다르다. 번데기는 ‘먹느냐, 먹지 않느냐’로 달라진다. 베드로도 번데기와 족발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식사 거부” 의사표시를 했으나, 결국 먹게 된다. 이방인을 전도하라는 환상의 계시로 풀이했다. 인식관이 이렇게 무섭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용과 양의 인식관은 변경되면 안된다. 성경은 용을 악마, 어린양을 ‘왕’으로 기준점을 설정했다. 양은 ‘섬김과 순종의 왕’, 용은 ‘지배와 권력의 왕’이다. 양과 용의 기준이 바뀌면, 성경의 흐름이 정반대로 뒤바뀐다. 마치 천국과 낙원의 의미를 바꾸면서, 재림예수의 존재까지 바꾸듯 그러하다.
재림예수는 부활의 그 예수님외에는 없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지금도 이 땅을 내려다보시는 그 예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