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오늘, 교회에서 돼지 김치찌개를 함께 먹었다. 성도들의 푸근한 인품은 기해년(己亥年)의 황금돼지 김치찌개다. 낯설지만, 마음으로 부딪히고, 탐색하고, 인사하고, 정이 드는 신앙공동체를 갖게 되어서 행복하다. 마치 가끔 전화가 오는 고향 친구들같다. 고향 친구들은 추억의 공동체여서 어떤 이권이나 이익이 결합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관계다. 사막같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신앙공동체다운 신앙공동체를 얻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신앙공동체의 결속력을 선물하셨다. 그것이 십자가의 숭고한 사랑이다. 그때부터, 제자들은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권력암투는 ‘모두 배신죄’에 걸려서, 섬김의 권력으로 결속력을 갖게 된 것이다. 교회는 이래야한다. 짐승같은 세상의 밀림속에서 교회는 따뜻한 은신처가 되어야한다. 한동안 다녔던 옛날 교회는 출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핸드폰을 반납하는 무서움의 창살이 있었다. 꼭 교도소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몇 번씩 건의를 했으나, 통제를 따르라고 할 뿐이다. 성도를 믿지 못하는 그 불신이 성도들을 죄인취급하듯 그렇게 밀림에 가뒀다. 그래서 은혜도 사라진 것이다. 은혜를 받지 못하였으나 은혜를 받았다고 손을 들어야하는 그 슬픈 비극앞에서, 나는 오늘의 김치찌개가 탁월함으로 맛있었다. 나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남은 김치찌개를 1회용 봉투에 겹겹이 포장해서 담아주신다. 고마웠다. 집에 와서 냄비에 넣고 끓여보니,
[마가복음 6:41]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가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듯이, 김치찌개가 주님의 선물임을 먹으면서 알게 됐다. 주님은 그날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백성들의 가족까지 챙기셨던 것이다. 바구니에 담듯, 남은 김치찌개를 선물로 받은 나는 은혜가 넘치는 하루였다.
남은 떡과 물고기지만, 사람은 다시 배가 고파진다. 인생은 살면서 금새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그때마다 주님의 양식이 필요하다. 사막같은 세상살이에서 영혼의 양식은 항상 필요하다. 군인도 비상식량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는데, 하늘군대로 살아가는 진리의 첨병이 양식이 떨어지면 안된다. 그래서 주님은 내게 김치찌개를 챙기시듯, 오랫동안 감춰놓은 성경의 찌개를 선물로 주셨다. 그 찌개 덕분에 나는 신앙이 살아났다. 신앙은 오직 하나다. 마음이 주님을 향해 불타는가? 하나님을 향해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가? 옛날 교회를 다닐 때는 설교를 들을 때마다 드라마 보려고 빨리 집에 갔는데, 새로운 교회를 다니면서 드라마 보다가도 성경이 읽고 싶어진다. 이렇게 변화된 내 모습앞에, 나는 숙연해진다. 모두 성경말씀의 찌개맛이 너무 맛있어서 그렇다.
김치찌개 담아주신 그 손길, 예수님이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