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으로,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듯, 그렇게 골고다의 바다에 던져지셨다. 암흑과 혼돈과 무질서의 바다속에 던져졌다.”
– 설교말씀 요약노트
이 설교말씀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다. 오늘도 기도하면서, 이 말씀이 내 마음에 깊게 물결쳤다. 예수님이 수면위를 걸어오시니, 베드로가 의심함으로 바다속에 빠졌다. 바다속에 빠진 것은 베드로였고, 제자들이었다. 도망침으로, 버림으로, 결국 제자들은 ‘주님이라는 구원의 배’를 버리고 바다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구하려고 기꺼이 바다속에 뛰어들어서, 제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구출하셨던 것이다. 베드로를 쳐다봄으로, 엠마오로 낙향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 제자들을 구출하셨던 것이다.
지하무덤에 예수님이 시체로 안치되었다. 실상은 예수님이 제자들이 있던 그 어둠속으로 찾아가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렸다고 했으나, 실상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도망쳤던 바다속으로, 그들이 도망쳤던 어둠속으로, 그들이 도망쳤던 죽음의 무덤속으로 예수님이 찾아가신 것이다.
로마병정이 지하동굴의 돌을 굳건히 지켰다고 했으나, 실상은 예수님이 용이 갇힌 지하감옥을 십자가로서 굳건히 지켰던 것이다. 십자가는 용을 가둔 감옥이며, 용이 묶인 형틀이다. 예수님이 죽은 것 같으나, 실상은 용이 영원히 사망에 갇힌 것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수면위를 걸으심으로 그 암흑속에서 ‘빛’을 창조하셨다. ‘그 빛’이 바로 ‘예수님’이다. 암흑속에서 빛을 끌어내심으로 빛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암흑같은 이 땅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마치 수면위를 걸으시다가 그 수면속으로, 심해속으로, 잠수를 하듯이 주님은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비로소 수면밖으로 나오시는 부활의 빛이 되신 것이다. 이 땅은 말씀을 떠남으로 암흑속에 갇혔고, 그래서 빛이 되신 예수님이 어둠속으로 내려와서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베드로가 지하무덤에 직접 찾아갔으나, 실상은 예수님이 베드로의 죽은 심령을 직접 찾아가신 것이다. 디베랴 호수까지 직접 찾아가시면서, 베드로의 그물질까지 도우시면서, 그 죽은 심령을 보살피신 주님이시다. 디베랴 호수가 베드로에게는 골고다였고, 나룻배가 지하무덤이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는 고향으로 낙향하는 그 길이 ‘골고다로 가는 십자가’였고, 낙담이 지하무덤이었다.
‘오해와 의심과 비난과 멸시와 천대’를 보듬을 수 있는가?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신 진실한 사랑의 형상이 이것인데, 사람으로서 ‘살과 피와 뼈’로 이루신 주님의 사랑을, 그 말씀의 사랑을, 그 행위의 사랑을 따르는 것이 참 힘들다. 작은 십자가부터, 작은 던져짐부터 사랑의 형상을 회복해야겠다.
나의 지난 3달이 소중하듯, 나의 30년도 내게 귀하다. 3달이 내 신앙의 살과 뼈이듯, 지난 30년도 그러하다.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절망도, 거짓도, 진실도, 모두 날씨처럼 인생을 찾아왔다가 지나간다. 과거는 그 자체로 내게 뿌리가 되고, 나는 그 모든 땅위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인생은 결국 율법을 완성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이뤄야할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