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진지하게 살아냈다. 성경과 함께 살아가는 하루는 천년처럼 길다. 중간에 드라마도 보고, 묵상도 하고, 까페도 갔다가 집에 돌아와 독서도 하고, 긴 하루를 보냈다. 이상세계(理想世界) 즉 유토피아는 이사야서 11장에 예언되었다. 이상세계 사인도 있고, 이상적인 성전도 있고, 이상적인 말씀도 있고, 이상적인 계시도 있는데, 왜 항상 싸울까? 얼굴은 가면을 쓴 웃음을 지었을까? 이상세계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표본이다. 사람끼리는 이상세계를 이룰 수도 없고, 사람이 이루는 거대한 공동체는 공산주의처럼 이상세계가 될 확률은 적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결국, 이상세계는 소그룹 형태의 모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예수님도 12명의 소그룹 제자 공동체를 통해서 이상세계를 이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도 얼마나 서로 싸우고, 볶고, 권력암투하고, 예수님께 뇌물을 쓰고, 그렇게 살다가, 막상 십자가를 직면하니 모두 도망쳤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상세계의 가나안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전쟁도 없고,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상세계를 기다렸건만, 어찌 레아와 같은 십자가가 온 것일까? 영웅같은 메시야를 원했는데 어찌 촌구석 출신의 그리스도가 출현한 것일까? 직업도 목수였으니, 제자들은 대부분 어부출신이고, 세례요한이 계시를 받고서도 아마도, 아마도, “레아구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하늘궁궐을 버리고 이 누추한 지구촌에 좌천을 결심하고 내려오신 그 분의 아름다운 구역사역 덕분에, 뱀이 잡힌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살아갈 수 있으니, 진정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