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도마복음 39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지식의 열쇠들을 취하여 감추었느니라. 그들은 들어가지 못했으며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도 들어가도록 허용치 않느니라.
천국의 열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경의 비밀을 열어주는 것이고, 지식의 열쇠는 성경해석을 이상하게 변질시켜서 성경속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서, 생명나무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됐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깊게 묵상하고, 늘 그곳에서 살길 원한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기를 원하듯이 그렇다. 사람이 물속에 들어갈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면, 뱀의 말은 듣기 싫어한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을 스스로 분별하면서 살아야하는데, 구원을 받았다고 스스로 자긍하는 이단들은 성경말씀을 읽는 것은 게을리하고, 구원에 대한 확증은 문패달 듯 높이고, 죄(罪)에 대해서는 무감각, 의(義)는 특권층보다 높다. 지식의 열쇠로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것이다. 그 누구든지 성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경의 문을 열어줘야한다.
16C에 교황은 지식의 열쇠로서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면죄부 조작 사건으로 막았다. 반면, 루터는 지식의 열쇠로서 성도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다. 지식의 열쇠는 결국 성경을 보는 눈을 의미한다. 도마복음은 위경이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자주 읽었던 성경으로 알려져 있다. 의심많은 도마조차, 누가복음 11장 52절을 인용하고 있다. 그만큼 그 시대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율법학자들이 ‘성경해석의 변질로서’ 성도들을 얼마나 압박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요즘, 유행하는 이단들의 각종 성경해석들이 2천년전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과 흡사하다. 물론, 기존 기독교 교단들도 인본적 성경해석으로 성도들을 억압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한 것 때문에 결국 이단의 돌연변이, 변종이 발생한 것이다. 십자가의 본질로 돌아가야한다. 구약에 대한 예수님의 성경해석이 원본이다. 그 원본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것이다. 천국의 열쇠는 바로 ‘예수님’을 말한다.
예수님은 빛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 빛의 자녀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다시 태어나면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믿음의 맏아들’이 된다. 이단들이 성도들을 족쇄채우는 것중에 가장 잘못된 것이 “자기를 떠나서 기독교에 가면 구원이 없거나, 예수님이 부끄러운 구원밖에 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 교리는 정말로 잘못된 것이다. 십자가 복음을 1%라도 알았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 시대에 잘된다고 해서, 그것으로 구원을 자부할 수는 없다. 성도들이 천국문을 제대로 열 수 있도록, 성경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천국의 열쇠를 성도에게 주는 것이 성직자의 마땅한 도리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 것은 본인이 독차지하라고 한 것이 결코 아니다. 천국의 열쇠는 곧 예수님이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을 통해서 풀리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인물과 사건은 예수님을 통해서 풀 때, 근본이 풀린다. 이것이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 비밀의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