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성경구절을 읽을 때마다 나는 ‘뇌물의 필요성’을 항상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맥락을 통해 성경을 깊게 읽어야한다고 배워서, 누가복음 16장을 깊게 읽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 해당 내용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시작한다. 누가의 사건기록은 호흡이 상당히 길다. 세리와 죄인이 말씀을 들으러 나아왔고, 바리새인들이 “이 사람(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한다”라고 수근거렸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을 영접했다. 세리는 돈을 셈하는 사람이니, 곧 청지기를 뜻한다. 9절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라고 했다. 뇌물로 사업을 성취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세상의 재물로 미래의 친구를 사귀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친구다.
‘계산’을 하면, 청지기는 직무가 박탈된다. 인생이 그렇다. 하나님께서 저울에 달면, 남아질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 상속재산을 가지고 해외에서 창녀와 놀면서 탕진한 차자도 한심하지만, 집에 살면서 효심과 형제애는 눈꼽만치도 없으면서 재물만 움켜쥔 장자도 비정하다. 차자는 돈을 허비했고, 장자는 애정을 낭비했다. 피차일반이다. 아버지가 장자에게 “계산하자”고 하면, 장자 직분도 날라간다. 왜냐면, 집에서 살았던 하숙비를 계산하면 상속재산이 장자의 것이 안될 수도 있다. 계산법이 이렇게 무섭다.
8절에서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를 통해서 유추하면, 부자는 사채업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채업자가 본업이라면, 부자가 청지기를 칭찬할리 없다. 당시 이스라엘 풍습에는 이자를 탕감하는 관례가 있었다. 청지기가 그 관례를 시행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악착같이 빚을 받아낸 것이 아니고, 이자를 탕감해줬는데 주인은 청지기를 칭찬했다. 장자는 아버지가 차자를 위해서 송아지를 잡자, “염소새끼도 잡아주지 않으면서, 송아지를 잡아주냐”고 따졌다.
상속재산을 탕진한 책임을 차자에게 추궁해야한다고 장자는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전혀 달랐다. 상속재산 탕진의 책임은 묻지도 않고,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기고 잔치를 열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인생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그것이다. 빚을 받아내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청지기는 빚을 탕감하면서, 빚을 진 백성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돌리도록 했다.
세상의 아들들인 세리와 죄인들은 마음과 정성과 회개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도리어 바리새인은 자신들의 의로움에 도취해서 예수님을 사귈줄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셈하자”고 하면, 그 직분이 박탈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바리새인은 돈을 좋아하니, 돈과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했고, 바리새인은 그러한 지적조차 받아드리지 않는다. 장자가 돈을 좋아해서, 아버지를 섬기듯 바리새인이 그러했던 것이다. 돈만 추구하니 주인은 그 청지기에게 셈을 하자고 어느날 통고할 수 있다. 그때가 오기전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간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