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유대교를 철저히 차별(差別)하는 기준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종교의 신도(信徒)가 되는 자격도 상당히 다르다. 유대교는 수동적, 선민적, 특권적, 혈연적 기준이 강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져야만 유대인이 될 수 있었다. 출생을 통해서만 유대인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방인이 유대인으로 개종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유대인은 개종한 유대인으로 근원적 유대인과 다르다.
예수님은 믿는 모든 자에게 성도가 될 자격을 부여했다. 차별이 없었다. 유대인은 로마의 폭정, 로마의 갑질 횡포를 하나님께 심판해달라고 기도했으나, 종교적 로마로서 유대교가 이방인을 정죄함으로 심판하고 있었다. 정치적 로마는 보여지는 폭력국가라면, 종교적 로마인 유대교는 안보이는 은밀한 폭력으로 백성과 이방인을 착취했다. 로마의 조상이 늑대의 젖을 먹고 살았다면, 유대인들의 조상은 뱀의 말을 먹고 파생됐다. 그래서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를 강력히 규탄한 것이다. 이방의 멸망으로 자신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족(自足)이 얼마나 한심했겠는가!!
예수님에 대한 유언비어가 고향까지 나돌았고,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데리고 가려고 오자, “누가 내 형제요, 자매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어떤 감정의 분출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는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된다. 이것이 제자 개념이다.
형제(兄弟)와 제자(弟子)는 가족 개념이다. 兄은 입(口)이 있다. 형은 항상 말을 잘한다. 먼저 태어나서 그렇다. 발언권도 강하다. 반면 弟는 활(弓)이 들어있다. 동생들은 항상 형앞에 허리를 숙이고 굴복해야한다. 형제(兄弟)는 계급과 서열을 나타낸다. 에서와 야곱은 서열다툼(장자권)을 하다가 남편과 아내가 각각 장자와 차자의 편을 들면서, 가족이 풍지박산까지 치달았다. 형제(兄弟)는 자식들끼리 서열을 따지는 것이고, 부모 입장에서는 모두 자식(子息)이다.
제자(弟子)는 형제(兄弟)와 자식(子息)을 줄인 말이다. 예수님이 제자를 삼으라고 한 것은 믿음의 공동체로서 형제를 삼고, 자식을 삼으라고 한 것이다. 가족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지는 혁명적 선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미국에 오면 누구나 시민권을 주겠다”고 하면, 난민들이 모두 몰려갈 것이다. 종교박해가 심했던 17C에 아메리카로 갔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와 요한과 도마와 가룟유다까지 12제자로 삼고서, 형제로서 대했다. 이것은 믿음의 가족 개념이다.
교우(敎友)는 교우(交友)와 다르다. 교우(交友)는 사귀는 친구다. 어제 종영한 남자친구가 바로 교우(交友)다. 반면, 교우(校友)는 학교 친구이고, 교우(敎友)는 교회 친구를 말한다. 우(友)는 右와 又의 합성이다. 악수하는 모습이다. 친구는 손과 손을 잡는 것이다.
미션(미스터 선샤인) 드라마에서 이병헌(유진 초이)이 김태리(고애신)에게 악수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무기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친구는 악수하는 사이며,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애신 : 악수가 무엇이오?
유진 초이 : 악수는 내 손에 당신을 해할 무기를 들지 않았다는 인사요.
고애신 : 그렇소, 그렇다면 악수합시다.
(서로 오랫동안 악수한다)
고애신 : 그런데, 이 손은 언제 놓소?
유진 초이 : 당신 손에 무기를 들고 싶을 때
교회는 주님안에서 모두 형제요, 교우(敎友)다. 주님이 맏형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여서 그러하다. 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마귀의 호적에서 하나님의 호적으로 옮긴 그 기쁨은 노비문서를 불태운 동학혁명의 갑오경장보다 더욱 행복한 일이다. 점심(點心)이다. 마음에 점만 찍는다는 점심이지만, 나는 맛있게 먹어야겠다.
** 붕우(朋友)은 함께 걷고(朋) 함께 손잡는 친구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