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 집에서 기도하고, 카타르 축구경기를 관람했다. 느릿느릿 긴장감이 감돌지 않게 진행된 평화축구였다. 축구는 공격과 수비가 빠르게 진행되어야하는데, 광풍도 없고, 열정도 없고, 마치 태평양같다. 후반전을 보는데, 전화가 왔다. 교회 집사님이다. 성경말씀과 관련해 예수님의 비유, 상석과 말석에 대해서 이야기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최고의 상석에 계셨는데, 마굿간의 말석에 태어나셔서, 죄인의 자리로 더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아!! 교회 금요기도회에 가지 못했는데, 전해들은 말씀으로 그 울림이 내게 물결치니, “아멘”으로 응답했다. 상석과 말석에 대해서 나는 “앉을 자리 설 자리 구분하고, 처세술이 중요하다”의 도덕적 교훈만 생각했는데,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해 깊은 말씀을 듣게 되니, 복음의 위력은 핵폭탄같다. 인본의 무지가 해체된다.
전화를 끊자마자, 카타르가 1골을 넣다. 그러더니, 금방 한국팀이 동점골을 터뜨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야호”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골인’의 자격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업사이드 때문이다. 공격수가 수비보다 앞에 있으면 업사이드다. 업사이드는 반칙이다. 상석(上席)이다. 결국, 축구도 상석을 인정하지 않았다. 상석에서 골을 넣은 한국선수는 무효가 되었고, 1:0으로 패배했다. 안타깝지만, 축구규칙은 규칙이다. 인생을 살 때도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을 피해야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오기 전에는 절대로 숟갈을 먼저 들지 않는다고 배운다. 아버지가 곧 집안의 주인이라는 암묵적 합의사항이다. 집안도 그러한데, 하물며 우주의 집안에서 아버지인 하나님이시랴!! 업사이드는 반칙이듯,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은 신앙인의 배반이다. 그가 누구든, 스스로 구원주가 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예수님조차 그 백성을 구하시려고 당신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셨는데, 하물며 인생이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