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는 세리 출신이다. 세리는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채업자다. 삭개오도 악덕 사채업자였다. 그들은 전도된 후에 잔치를 열었다. 그때, 예수님의 엄청난 말씀이 쏟아졌다. 평소 예수님은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누가는 누가복음 15장에서 세리와 창녀가 참여한 잔치를 세밀하게 보도하고 있다. 아마도 마태와 삭개오가 주최한 잔치였을 것이다. 잃어버린 양한마리 비유와 집을 떠난 탕자는 절묘하게 일치한다. 그런데, 우리는 집을 떠난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차자를 환대하고,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주고 신발을 신긴 장면이 나온다. 이것을 단순한 대접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영예로운 명예와 권세와 자리로 볼 수도 있다. 과연 그렇다면 장자가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이럴 경우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바벨 (TV조선) 드라마에서 차자 태민호가 거산그룹 사장이 되었다. 장남은 평사원에서 고생을 하면서 임원이 되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태민호가 들어와서 사장이 된 것이다. 그래서 장자인 태수호는 아버지에게 강한 불만을 토로한다. 마치, 성경속 그 장자처럼 그렇게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다. 성경에서는 차자가 돌아오자, 잔치를 열었다고만 되어있다. 차자에게 장자가 원하는 것을 줬다면, 장자는 그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는 이러한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가령, 헤롯왕은 광개토대왕처럼 그 시대 유대인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위대한 통치자였다. 그는 안토니우스에게 줄을 섰다가,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자, 곧바로 줄을 바꿔서 아첨한 인물이다.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했던 인물이다. 조선의 이성계도 위화도 회군을 통해서 명나라를 택하면서 고려의 권문세족에게 반기를 들었다. 국제정세속에서 온갖 수모와 멸시를 견디면서 헤롯가문은 김일성 가문처럼 3대째 유대왕을 유지했다. 틀림없는 장자였다. 다윗의 전설이 헤롯왕에게 해당될 것이 분명한데…… 업적으로 보나, 가문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왕권의 전설을 예수님께 줬다. 그들이 보기에는 볼품없는 곳, 잃어버린 양한마리처럼 버려진 곳에서 나타난 예수에게 왕권이 갔다. 장자로서 그들이 받아드릴 수 없었다.
12사도는 예수님을 직접 따랐다.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모심과 섬김과 증거의 사명을 다했다. 비록, 십자가 사건에서 도망쳤지만, 40일의 부활기간에 회개해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맞이하고, 베드로는 엄청난 역사를 일으켰다. 그런데, 그 어느날 핍박자 사울이 다멕섹에서 돌이키더니 예수님께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택함을 받았다. 차자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제자들은 받아드리지 못했다. 그래서 16년동안 바울은 홀로 전도여행을 다녔다. 어느날, 바나바라는 동역자가 바울을 추천하기전까지 그러했다. 하나님은 노아의 자손인 함이 정착한 가나안땅을 아브라함에게 줬고, 훗날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집트에서 탈출해 가나안에 들어서게 했다. 이러한 것도 차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럴 때 장자는 받아드릴 수 있는가?
에서와 야곱의 경우도 동일하다. 에서는 평소 아버지에게 엄청나게 잘했다. 야곱은 어머니에게 잘했다.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를 통해서 정보를 듣고서 축복기도를 먼저 받았다. 장자인 에서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차자인 야곱을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부모는 에서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하기로 결정하고,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야곱은 그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가? 축복기도를 받아서 자신이 재산을 상속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도망자가 된 것이다. 야곱은 순순히 받아드리고 집을 떠났다.
만약, 아버지가 차자에게 장자의 명분을 줬다면, 장자는 그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가? 일상생활에서, 단체의 조직에서 탕자의 복권은 자주 일어난다. 그때 장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더불어 장자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것을 세밀히 파악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아버지의 생각은 장자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자는 집을 떠난 차자 때문에 기뻐하고, 아버지는 그 차자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장자는 집의 상속과 장자권을 생각하고, 아버지는 자식의 건강과 형제애를 생각한다. 이렇게 다른 것이다. 아버지 입장에서 누구를 장자로 생각하겠는가?
언젠가 교회에서 목사님은 “진정 아버지를 사랑하는 장자였다면, 아버지의 마음으로 집을 떠난 차자를 찾으러 갔어야 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유랑하시듯 내려오셔서 잃어버린 차자를 찾으신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마음 깊이 울려 퍼졌다.
예수님은 그물에 갇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를 찾았고, 돈에 갇힌 세리 마태를 찾았고, 율법에 갇힌 사울을 찾았고, 향락에 갇혔던 사마리아 여인을 찾았고, 비진리에 갇힌 나까지 찾으셨다. 경제감옥과 정치감옥과 종교감옥에 갇힌 백성들을 찾았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돌이킨 차자들은 모두 집에 돌아와서 장자권을 회복했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의 본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므로, 그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얻게 된다. 장자권을 받으면 천국을 상속받는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