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이 파이브.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만나고싶은 사람이 나에게 있다. 가슴속 앓이처럼 눈물로 응어리져 ‘그리운 달’이 된 사람이 몇 있다. 보고싶은 사람이 보고싶은 것은 사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만난 사람들.
국민대학교, 순천고등학교, 동강중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몇몇 보고싶은 사람이 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고싶은 몇 사람이 있다. 나의 인생이 ‘인맥의 복’(人福)이 없어서 그런지 그런 사람이 열손가락은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도 다섯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려우니, 인복이 아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립고 그리운 사람이 나에게 연락을 하려나? 까치가 날아오면 좋은 사람이 온다고 했는데, 나의 동창들이 까치처럼 전화가 자꾸 온다. 나의 그리운 사람이 전화가 오려나? 마음이 몹시 아렸다. 오늘. 동창들에겐 미안하기도 하고, 내 기억속에서 잘 기억이 나질 않으니, 어쩌겠는가. 공유했던 사연을 더듬으려고 해도, 미래소년 코난의 기억 말고는 순고에 대해서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40’이란 숫자와 함께.
추상적 이미지로서 ‘순고 40회’라는 그룹에 묶여서 사회생활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순고 동창들도 열심히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대견스럽기도 하고, MERS처럼 각박한 경제를 모두 버티면서, 사막의 낙타처럼 묵묵히 걸어왔을 중년의 사내들이겠다. (낙타는 요즘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지만….)
까페에서 까치처럼 울린 전화벨소리를 들으면서, 전화통화를 나누면서, 아주 오랜만에 사람의 사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게 새겨본다. 내가 순천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였다면 어떻게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편하게 이야기를 했겠는가? 전화번호를 알았다고 하여도, 서로 함께 했던 시간이 있으니, 나의 기억이 단지 흐릴 뿐, 함께 했던 시간이 있으니 그만큼 반가운 것이리라. 내가 기억 못하는 추억을 나의 동창들은 나를 기억할 수도 있으니…. 마치 내가 기억하는 동창들이 있듯이…..
벌써 ‘44’의 나이를 지나고 있으니, 오늘 지금 오후 4시를 넘어 벌써 5시 48분을 지나고 있다. 인생의 나이가 오후를 넘어서고 있는 셈. 이러다가 곧 해가 저물 것 같다. 내 인생의 해가 저물면 이제 어쩌나? 그러기전에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깊게 고민하고, 생각에 잠겨본다. 내일은 주일이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깊은 물음을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