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성경을 알고 싶은, 자유의 꿈이 있다. 그래서, 날마다 성경을 읽고, 탐구하고, 사람을 만나 토론하고, 인터뷰하고, 그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말보다 실천”이라는 명언은 내 인생의 가치관이다. 30년동안 빠졌던 과거 단체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이며, 나의 철학이다.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 그것이 옳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촛불혁명의 위대함은 무엇인가? 할말 한 것이다. 태극기는 태극기로, 촛불은 촛불로 표현의 자유를 부르짓은 것이다. 이것은 ‘정의’보다 ‘자유’가 우선되는 자유민주주의다. 이미 알려진대로, 보수는 ‘국정원의 댓글조작’으로 물의를 일으켰는데, 현정권도 드루킹이 구속됐다. 정권은 모두 똑같다. 침묵이 잘못된 것이다. 모두 말하라!!
우리는 북한이 아니다. 남한이다. 자유민주주의다. 남한에서 “김정은 만세”라고 하면, 그것이 ‘합법’이고, 남한에서 “대통령 문제있다”고 하면, 그것이 ‘불법’인가? 대통령이 무슨 황제인가? 대통령은 심부름꾼이다. 다른 말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수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여전히 “김정은의 대변인”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우리 목사님들을 풀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가!! 김정은의 노예가 될 것인가!! 왜 촛불을 김정은을 향해서 들지는 못하는가!! 미군이 철수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진보의 문제는 ‘역사의 왜곡’에 있다. 진보는 항상 ‘친일청산’을 운운하면서, ‘소녀상’ 뒤에 숨는다. 어리석은 역사의 문맹자들이여!! 독립문은 왜 세워졌는가!! ‘중국으로부터 독립’이 바로 동학혁명을 통해서 얻어낸 민족의 위대한 역사다. 2000년이 넘게 한반도는 중국의 식민지였다. 조선이라는 국호도 중국의 허락을 받고서 사용했으니….. 북한은 중국의 꼭두각시이고, 진보는 북한을 향해 도대체 무엇을 담판지었는가!! 좋은 것이 좋다고 허허실실 웃었는데, 그들은 땅굴을 파고, 그들은 핵무기를 만들고, 그들은 전쟁을 준비했다. 과연 한반도를 돕는 것은 누구인가!! 미국이다.
그것을 부인할 것이면, 독립문이 왜 생겼는지 깊게 탐구해야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로서, 미국의 정치제도가 들어왔다. 그래서 자본주의로서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린 것이다. 중국조차 공산주의가 너무 힘드니까 자본주의 제도를 허용하는 공산주의를 채택했는데, 썩은 보수 때문에 진보가 정의가 될 수는 없다. 나는 나경원 원대대표의 소신있는 발언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여전히 국회는 인기영합주의로 꿀먹은 벙어리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북한에 넘어가서, 사진 몇장 찍으면서, ‘평화모드’로 전환될 듯, 말 듯, 그렇게 흐를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쇼를 하면서 살아가는가!!
김정은은 김정은일 뿐이다. 모두 할말 하면서, 소신껏 살아야한다. 베드로는 유대민족 국회에서 “구원주를 죽인 살인자들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한 직언이 죽은 양심을 깨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혁명의 민심을 훔쳐서, 썩은 보수정권을 헐값에 매도해서 얻어낸 ‘남북평화의 결과물’이 무엇인지, 이제 점검해야한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직언으로 물거품이 될 남북평화라면, ‘거짓의 평화’임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남북평화가 보이스 피싱인지, 아닌지, 과연 우리는 반드시 확인해야한다. 모든 삶은 그렇게 사는 것이 합당하다. 누구도 믿을 존재가 아니므로….
마태복음 24장은 감람산 말세 예언이 있다. 이 장면은 사무엘하 15장에 나오는 다윗의 감람산 피난길과 흡사하다. 사무엘하 19:16 다윗왕의 귀환은 마태복음 24:30 영광으로 오시는 인자와 연결된다. 압살롬이 죽고, 다윗왕이 귀환하면서 ▲저주한 시므이 ▲므비보셋과 시바 ▲바르실래와 김함의 문제를 처리했다. 저주한 시므이는 참회하자 용서했다. 므비보셋의 재산은 종 시바에게 넘겼다. 곤경에 처한 다윗을 극진히 대접한 바르실래는 아들 김함을 추천해서, 다윗은 김함을 후대했다. 김함은 베들레헴 땅을 하사받았다.
마태복음 25장은 열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구분 비유가 나온다. 양과 염소 비유는 왕의 귀환을 통해 다윗왕이 공적자와 반역자를 분별해서 처리하는 장면과 일치한다. 열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도 동일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은 자들이 왜 다르게 행했을까? 특히,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 달란트 가진 자는 ‘므비보셋처럼’ 했기 때문이다. 다윗왕이 도망가니, 므비보셋은 눈치보면서 다윗왕을 돕지 않았다. 다윗왕은 곧 예수님을 뜻한다. 교회가 잘되는데, 성도는 진심을 다해야한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할까? 사무엘하 15장~19장까지 광야길에서 왕의 귀환으로 돌아오기까지, 바르실래처럼, 시바처럼, 후새처럼 사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교회를 옮긴 것은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옮겼고, 십자가로 이동했다. 내 인생에서 십자가를 인정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넘어간 것만큼 대변혁의 사건이다. 그렇게 한 것은 하나의 이유다. 내가 틀렸고, 십자가의 성경적 해석이 옳기 때문이다. 틀린 것을 인정하니, 완전히 달라졌다. 인생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즉시 새롭게 행한 것이다. 한 달란트 가진 자는 땅속에 묻었다. 즉, 기존에 하던대로 그대로 계속 한 것이다. 아!! 똑같은 빈치 와칭!! 지겹다. 무엇이든, 완전히 다르게 졸업해야 새롭게 행할 수 있다.
솔직히, 할말 한 나경원 대표가 훨씬 진보적이다. 하노이 평화회담 결렬이 훨씬 희망적이다. 그 무엇이든 공짜는 없다. 이제는 결산해야한다. 언제까지 퍼주기로 희생만 해야하는가? 1달란트 받은 자가 이자수익도 내지 않으니, 주인은 1달란트를 10달란트 있는 자에게 줬다. 1달란트는 3억원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오직 주님께 유익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한반도에 무엇이 유익인지, 국민 모두는 진지하게 성찰할 때다.
글쓰는 재능이 달란트라면, 나는 계속 썼다. 투자한 것이다. 쓰고, 쓰고, 쓰고, 쓰고, 날마다 썼다. 나는 땅에 묻지 않았다. 쓰다보니까, 비판이 많았다. 누군가는 내가 쓴 모든 글을 “내리라”고 해서, 나는 “알았다”고 하고, 전자책으로 모두 만들어서 출간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는 5천권 넘게 책을 출간했다. 모든지, 해야 재능이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