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월 22일 누가복음 22장을 읽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맞아서, 제자들과 성만찬을 하고, 권력다툼이 일어난 제자들에게 ‘섬김의 권력’을 다시 강조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기도를 마치자, 가룟유다가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팔아넘겼다. 베드로는 도망쳤다가 가야바 대제사장 뒤뜰까지 찾아갔다가 3번 부인했다. 다음날 새벽, 예수님은 산헤드린 공회에 서서,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도대체, 우리 예수님의 당당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기도(祈禱)!!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본래부터 강한 믿음과 담대함을 가지셨다고 하면, 부분만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22장 29절에서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이라고 말씀했다. 항상 시험의 사건들이 많았음을 말씀하신다. 42절에서도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제자들이 모두 졸았으니, 예수님의 기도내용을 누가 들었는지 ‘출처의 확실성’에 문제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상이(相異)했고, 갈등상태에 놓였다. 현실이 거꾸로 돌아갈 때,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그리고, 거꾸로 돌아가는 현실은 더 반대방향으로 돌아갔다. 기도를 마치니,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가룟 유다가 입맞춤으로 ‘공개 수배범’ 지목하듯 예수님을 넘긴 것이다. 현상금 때문이다. 근원적으로는 ‘현상금의 탐욕’을 빌미로 사탄이 가룟유다 생각속에 들어갔다. (누가복음 22:3)
예수님이 보는 곳에서, 베드로는 3번이나 부인했다. 증인이 되어줄까, 내심 기대하셨는데, 베드로는 꽁무니를 빼다가 3번 부인하고, 닭이 울었다. 그리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했다.(누가복음 22:62) 닭이 울면, 돌이켜서 증인을 서줄까, 예수님은 내심 기대하셨을 것인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시험에 들 수밖에 없는 예수님인데, 권력앞에 비굴하지 않고, 예수님은 당당하셨다. 아멘!! 기도하자. 기도하자. 기도하자. 시험에 들지 않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나님의 뜻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기도하자. 예수님은 제자가 팔아넘기고, 제자들이 도망치고, 대제사장과 종교 책임자들이 똘똘 뭉쳐서 음모를 꾸민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셨다. 인생은 그렇게 살다가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