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罪)와 용서(容恕)는 빚과 탕감이다.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함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라고 했다. 사람끼리 다양한 죄를 짓는다.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것이 ‘채무’인데, 성경은 그러한 채무를 ‘죄’로 비유했다.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 그것이 곧 ‘죄’(罪)다. 빚=죄
주기도문의 기도에 나온 ‘죄’는 2가지 종류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라고 말할 때는 사람끼리 지은 죄를 말한다. 뒤에 나온 ‘우리의 죄’는 사람과 하나님의 죄를 말한다. 사람끼리 지은 죄는 사람끼리 해결해야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한 죄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하신다.
우선, 주기도문에 보면, 일용할 양식과 죄문제를 함께 거론하고 있다. 죄문제는 날마다 살면서 해결하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육신의 양식과 영혼의 양식을 날마다 챙기듯이, 사람이 사회에서 살면서, 교회에서 살면서 발생하는 불편한 마음들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청산하고, 청소하면서 살아야 행복하다. 방청소하듯, 관계청소를 해야한다.
죄는 빚으로 비유된다. 빚은 갇힌다. 부담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이 없는 사람들이 없다. 그처럼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 없다. ‘십자가’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것도 혹여 ‘무감각의 영적 교만병’에 걸릴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한다. 성도 스스로 자신의 감각이 나무토막처럼 강퍅해진 것을 깨워야한다. 감각이 죽으면, 사람은 느낄 수도 없고, 성령의 숨결을 알 수도 없다. 죄는 감각을 죽인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제자들 권력 암투 ▲실족시키는 죄 ▲잃어버린 양 한 마리 ▲형제의 죄 ▲490번 용서 ▲만달란트 탕감의 비유 말씀이 있다. 99마리 양이 있는데, 잃어버린 양한마리는 왜 길을 잃었을까? 왜 탕자는 집을 떠났을까? 탕자가 창녀를 사랑해서 집을 떠났다고 하기보다는 집을 떠남으로 타향에서 외로우니 허랑방탕하다가 창녀와 놀아났다고 봐야한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왜 교회를 떠났을까? 마태복음 18장은 ‘죄’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죄는 쌍방 과실이 대부분이다. 돈은 빌린 쪽과 갚는 쪽이 명확하지만, 죄는 그렇지 않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호하게 겹쳐져 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발생했으면, 그때는 형제를 찾아가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용서할 일이 있으면 용서를 하면서, 혹은 용서를 구하면서 풀어야한다. 그것이 마태복음 18장의 비유말씀이다. 혼자서 안되면, 2명이 함께 가야한다. 그래도 안되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했다.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는 말씀을 통해 볼 때, 교회에 다니다가 성도와 불편한 문제 때문에 믿음을 파선한 경우를 뜻한다.
만약, 다른 교회로 출석해서 믿음이 잘 정착한다면, 이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 그것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것이다. 어떤 양은 교회에 있으면서도 길을 헤매기도 한다. 교회안에서 길을 잃은 양에게 ‘길을 찾아주는 목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마태복음 18장 21절에 등장하는 만달란트 빚진 종과 어떤 왕의 탕감정책을 눈여겨 봐야한다. 이 왕은 성격이 매우 까다롭고, 화끈하고, 명령을 손바닥처럼 바꾼다. 좋게 할 때도 있고, 안좋게 할 때도 있다. 기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 그것을 보고서 왕은 마음을 바꿔서 판결을 하고 있다. 대통령은 판결권이 없는데, 이 왕은 판결권도 가지고 있다.
이 왕이 등장하기 전에, 마태복음 18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말씀이 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사람에게 모든 결정권한이 있다”라고 생각하는데, 이 말씀 다음에 등장하는 왕의 성격과 연결해서 해석하면, 마음이 낮아질 것이다. 왕은 종이 어떻게 하느냐로 왕의 마음을 바꿨다. 땅에서 풀면, 왕이 풀었고,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 묶었다.
종이 식구들을 살려달라고, 풀어달라고, 가족의 생명을 위해서 슬퍼하니, 왕은 가족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종의 마음을 불쌍히 여기면서 그 종의 채무 만달란트를 풀어줬다. 개인회생을 시켜준 것이다. 개인회생을 하면, 모든 채무가 법적으로 사라진다. 만달란트는 3조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그때, 이 종이 너무 기뻐서 집으로 가는데, 자신에게 빚진 자를 만났다. 100데나리온이다. 1천만원에 해당한다. 이 종은 1천만원 빚진 자의 멱살을 잡고서, “내 돈 갚아!! 너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면서 감옥에 넣어버렸다. 그 소식이 왕에게 들리니, 왕은 종의 행함을 보고서, 만달란트의 채무를 다시 부활시켰다. 종이 빚진 자를 묶으니, 왕도 그 종을 묶은 것이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는 것을 하늘을 조정하는 리모콘으로 착각하면 절대로 안된다. 리모콘으로 생각하고 영적인 주술신앙을 하다가는 교만병에 걸릴 뿐만 아니라, 스스로 갇히는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종이 왕에게 가족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니, 왕도 종을 불쌍히 여겼다. 반면, 그 종이 빚진 친구에게 분노하고, 때리면서 빚을 받아내려고 감옥에 넘기니, 왕도 그 종에게 분노하고, 만달란트 빚을 기어이 받아내기 위해서 감옥에 가뒀다. 그 감옥이 만약 지옥이면,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도 마음으로 가두면 안된다. 긍휼히 여기면서 기도해주는 것이 마태복음 18장에 등장하는 ‘어떤 왕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