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2019.5.1) A4면
[서울교육방송 장창훈 기자]=교주고슬(膠柱鼓瑟)은 아교풀로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붙이고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고사성어다. 옛날에 내가 그랬다. 음악적 소질이 없다보니, 강화도 해병대 시절 병장의 영광을 누리면서 후임병중에 기타리스트가 들어왔다. G7 코드를 배우고, 연주법을 익히고, 날마다 밤새도록 연주했다. 어느날, 소대장에게 익명의 제보가 들어갔다. 내 연주를 그만 멈추게 해달라는 것이다. 내 아버지는 기타를 만들어서 판매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으나, 나는 음악이 음치다. 코드만 배운다고, 기타를 연주할 수 없다. 교주고슬의 다른 이름은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이 무섭다. 천동설과 지동설은 이미 증명된 고정관념의 판결문이다. 현장에서, 사람에게, 코페르니쿠스적 대변동은 자주 일어나고, 일어나야하고, 발생하지 않으면 고정관념에 갇힌 것이다. 고정관념에 갇히면, 그것은 질서요, 평화요, 잔치요, 억압의 권력이요, 자색옷을 입은 부자의 풍요다.
녹두꽃이 1회, 2회를 방영했다. 나는 깜짝 놀랬고, 드라마를 통해서 다양한 상상을 하면서, 성경원문을 보다 집중해야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녹두꽃은 분명 동학혁명을 다루는데, 연출된 장면은 성경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언뜻 보면 복음같다. 그러나, 복음에서 발췌한 것들로 편집된 것이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거지 나사로와 자색옷 부자를 ‘탐관오리 조병갑의 잔치’로 비유한 대목이다. 극적인 연출장면을 보고 있으면, 신선한 충격이 밀려온다. 이때, 믿는 성도는 드라마를 통해서 옛뱀의 시험을 받는 것이다. 원본은 무엇을 말하는가?
가끔 나는 성경이 무화과 나무같다고 상상한다. 무화과 나무는 옮겨심기가 금방 되고, 가지는 쉽게 부러진다. 내가 살았던 고향 집에는 무화과 나무가 있었고, 아버지는 어느날 내가 보는 앞에서, 무화과 나뭇가지를 하나 툭 분질러서 뒷마당에 심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하면 무화과가 열려요?”라고 물으니, 아버지는 “그럼, 무화과는 나뭇가지를 꺽어서 심으면 금방 자란단다”라고 알려주셨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처럼 성경의 비유와 사건을 무화과 나무 꺽듯이 가져가서 붙이면 어디서든 금방 접목된다. 그러나, 성경 원문이 무엇을 말할까, 그것에 신경써야할 사람은 믿는 성도다. 뱀은 늘상 사족을 붙이고, 믿는 성도는 성경원문으로 구원을 받으니, 성경이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그것을 파악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일보를 보면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이순신 장군으로 비유된 사진은 탁월하다. 옛날에는 이런 사진을 보면서, 너무 의도적이라고 비판했다. 요즘은 상당히 고급적 편집이라고 판단한다. 정치이념과 상관없이 사진을 통해서 보수적 색채를 완벽하게 드러낸 그들의 세계를 존중하는 것이다. 나경원 의원이 내려다보는 모습은 이순신 장군이 청년당을 내려다보는 모습과 묘하게 연결되고, 그 뒤편에는 증명사진으로 줄어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있다. 사진 3장으로 조선일보는 보수의 결집을 요청한다. 이러한 편집방법이 복음서에도 적용된다. 편집의도는 전체 문맥과 맥락을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