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을 보면, 전봉준은 동학혁명을 일으킬 때 전주지역의 지역회 회장이었다. 정치적 전문용어로 보면, 전주시장의 직급으로 추정된다. 그의 세력이 너무 강성하니, 동학의 교주가 만류한다. 동학입장에서 경계대상 1호가 된 것이다. 전봉준은 동학안에서, 동학밖에서 위험인물이 되었다. 녹두꽃 1~2회를 통해 보여지는 그의 삶은 예수님과 많이 닮아있다. 닮게 연출한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혁명적 구원을 말씀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4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은 나사렛 고향에서 구원의 복음을 원자폭탄처럼 터뜨리고, 뜻을 이루셨다. 대충 보면, 그들이 받아드리지 않은 것 같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곳에 가셨고, 뭔가 큰 역사가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은 이사야 말씀으로, ‘심판의 말씀’은 배제하고, ‘은혜의 해’를 나사렛 고향에 선포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곳에서 추출당하셨다. 고향에서 선지자가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씀도 하셨으나, 나사렛 고향에 은혜를 선포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예수님은 그곳에서 배제되였다. 이것이 예수님의 구원이다. 이러한 사례는 복음서에 자주 등장한다.
예수님은 “원수같은 로마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유대교로부터 원수가 되셨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바알세불로 불리셨다. 누군가에게 5천만원의 빚이 있다면, 예수님은 그 5천만원의 빚을 대신 갚으시겠다고 신용보증을 서신 것과 같다. 신용보증을 서면서, 5천만원의 빚은 예수님께 오는 것이다. 이것이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구원방법이다.
누가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를 지나서 ‘거라사인 도시’에 가려고 했다. 그때 공동묘지에서 귀신들린 자를 만나서 그를 치료해 주셨다. 고침을 받은 그는 집으로 갔는데, 정작 예수님은 거라사인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건을 본다. 이것이 예수님의 구원방법이다. 어떤 사건을 해결하면, 그 사건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예수님은 구원섭리를 펼치셨다. 과연 그러할진대, 그 누가 ‘구원주’의 사명을 함부로 감당할 수 있으랴!!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 이유는 예수님이 ‘영혼의 사망’에 처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육체가 무덤에 계시는 동안에 영혼은 음부에 실제로 계시다가 부활하셨다.
** 예수님의 구원섭리 방법은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자세히 표현된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자신의 직장과 입장이 손해당할까봐 강도만난 자를 외면했고,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으나, 2번이나 여리고 여관에 방문하고, 여관비 납부를 위해서 3번째도 방문할 것을 약속했다. 이것이 예수님의 구원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