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수학 선생님이 한참 말하다가, 갑자기 침묵하면, 그 정적은 잠자는 자도 깨운다. 침묵은 뭔가를 예고한다. 누가복음 4장 20절에 정확히 그 사건이 기록되었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서, 이사야 예언서를 받아서 펼치시고, 61장을 편집과 수정된 내용으로 축약해 읊으시고, 맡은 자에게 두루마리 성경을 건네주신 다음, 앉으셨다. 그냥 앉으셨다. 회당에 모인 청중이 그 광경을 주목하여 보았다. 주목(注目)은 눈을 긴장해서 뜨고 쳐다본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다. 아멘!! 성경은 내게, 응하는 것이다. 감당하기 거북하고 불편한 내용도 내게 응하는 것이다. 내게 응하지 않는 성경말씀이면, 나와 하나님이 상관이 없다. 성경말씀은 내 삶에 개입해서, 나를 개간하며, 나의 가시덤불을 없애며, 내가 신성시하는 우상들을 철거하며, 내가 오랫동안 사귄 것들을 섬멸하며, 내가 익숙한 친구들과 결별하며, 낯선 것들로 배경을 펼칠 수도 있다. “오늘 내 귀에 응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나로부터 출발점”이다. 칠판에 뭔가를 쓰던 담임 교사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잠자는 너”라고 지목했으면, 그것은 잠을 잤든, 안잤든 바로 “나”를 말하는 것이다.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돌을 든 모든 사람들이 물러갔다. 말씀은 오늘 내게, 각자에게 응하는 것이다. 응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밖으로 쫓아낸다. 말씀이 인생의 심령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낭떠러지로 밀어뜨리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와야한다. 화살이 과녁에 꽂히듯, 말씀은 반드시 마음의 과녁에 명중당해야한다. 그렇게, 자신은 죽고, 말씀으로 다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