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월 17일 누가복음 17장을 읽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을 초대한 큰 잔치를 개최하고, 다양한 비유설교를 거지 나사로 이야기로 마침표를 찍으신다. 이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루에 7번이라도 형제가 죄를 짓고 회개하거든 너는 용서하라”고 강하게 훈육한다. 제자들은 뜨끔했을 것이다. 이에 사도들이 조심스럽게 나가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간청한다. 그때, 예수님은 ‘종의 책무’를 언급하시며,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라고 못을 박는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와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합니까”라고 물었다. 이 대목은 ‘인식론적 관점’에 덮혀 있다. 언어는 매우 추상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용하는 자들마다 각자의 세계로 인식한다. 북한정권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한반도의 강한 국가로 생각한다. 각종 이단들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정치인들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국민의 뜻’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이 생각하는 그 나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없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임할까? 누가복음 17장 22절 이하에 자세히 나와있다. 핵심은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공간적 위치의 나타남’이 아님을 분명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예수님은 노아의 때, 롯의 때 2가지를 언급하신다. 두 사건은 심판이다. 정확히 서술하면, 심판 후 새로운 창조다. 세상을 심판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바로 ‘노아의 때’와 ‘롯의 때’이다. 노아의 때는 홍수심판후에 새로운 노아 가족의 세계가 펼쳐졌다. 롯의 때는 소돔성 심판후에 아브라함의 세계가 새롭게 펼쳐졌다.
예수님은 노아의 때를 언급하시며,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라고 하시고, 롯의 때를 언급하시며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신다. 롯의 처는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멸망의 사람이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농사), 집을 짓고(건축) 등등 재테크를 하고,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당연한 삶의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강하게 말씀하신다. (세상 것만을 탐닉하고, 하나님이 실종된 사람은 롯의 처와 같이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림을 당하는 심판을 받을 수 있다. 롬1:28)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라는 것이다. 북한을 탈출하면,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이 휴지가 된다. 그처럼, 이 세상을 떠나면 여기서 이룬 모든 업적과 소유는 휴지가 된다. 믿는 성도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약속으로 살아가야한다. 세상 것 추구하다가 하나님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