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는 의사출신이다. 의사는 근원을 따진다. 누가복음을 읽을 때는 ‘편집된 의미’를 깊게 새기면서 읽어야한다. 사건과 사건이 연결된 것은 맥락을 통한 의미가 존재한다. 말세예언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비슷하게 나오는데, 21장 34~38절만 누가복음에 추가되었다. 추가된 부분이 누가복음에서 특히 강조하는 핵심일 수 있다.
누가복음 21장은 ▲과부의 두 렙돈 ▲성전 멸망 ▲말세현상 ▲인자의 영광 ▲무화과 나무 비유 ▲‘스스로 조심하라’ 말씀이 나온다. 말세예언 비유를 빼면, 과부의 두 렙돈이 ‘스스로 조심하라’와 바로 연결된다. 부자들이 헌금하는 것과 과부의 두 렙돈을 비교한 것이 과연 헌금액수를 말하는 것일까? 헌금액수를 논한다면, 성전유지에 부자의 헌금이 훨씬 유용할 것이다. 하나님을 맞이하는 성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과부의 두 렙돈의 신앙심으로 살아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8장에 따르면, 과부의 두 렙돈 정신을 가진 빌립보 교회가 극심한 궁핍에 넘치는 헌금을 했다고 하니, 두 렙돈의 신앙심은 장기적으로 볼 때, 성전유지에 더 유익할 수 있다. 과부는 없는 중에도 모든 것을 드렸으니, 풍족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부유한 고린도교회와 가난한 빌립보 교회가 은연중에 보여지는 사건이기도 하다.)
누가복음 21장 34절에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마음이 곧 과부의 두 렙돈 신앙심과 연결된다.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듯,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면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았다. 마음이 둔해지면, 덫과 같이 그 날이 올 것이다. 조선의 지도부는 각종 민란과 임오군란과 동학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멸망을 알지 못하였다. 1905년에 외교권이 박탈되어도 지도부는 건재했다.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되어서도 지도부는 건재했다. 백성과 재야의 지식인들만 의로운 분노로 슬퍼했을 뿐, 지도부는 향락과 잔치를 벌였다. 마음이 둔해지면 멸망도 희락으로 알고, 마음이 깨어 있으면 능히 심판을 피할 수 있다. 매일 기도함으로 깨어 있어야 갑자기 찾아올 세상의 유혹을 피하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