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0장에서 ①불의한 법령 ②불의한 말의 기록 ③불공평한 판결 ④백성의 권리 박탈 ⑤과부를 토색(討索) ⑥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들에게 화(禍)가 있다고 경고한다. 현대사회는 삼권분립에 언론권력이 합쳐져서, 사권분립으로 불린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언론부이다. 불의한 법령제정은 입법부, 백성의 권리 박탈은 행정부, 불공평한 판결은 사법부, 불의한 말을 기록하는 것은 언론부의 뉴스보도이고, 과부를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것은 행정부 소속의 탐관오리를 의미한다. 국가와 종교는 그 지도부가 정도(正道)에서 멀어지면, 결국 무너진다.
10장 2절에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집트 바로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하시듯,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소유권에 있어서, 믿는 성도는 깊게 고찰해야한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소유권을 허락했지만, 소유권의 출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주심으로 그 소유권이 인정된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에서도 부자는 자신의 소유를 자기 마음대로 했는데, 지옥에 갔다.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부자는 자신의 소유로 착각해서 그렇다.
시간과 돈과 명예와 지식과 아내와 자식과 친구와 학벌이 주어졌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달란트 분깃’이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한다. 그것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위정자가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국가를 통치할 권한을 임시로 맡긴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자기 마음대로 권력의 칼을 휘두른다면, “화있을진저”에 해당된다. ‘종교와 성경공부’를 빙자해서 사람모집을 전도로 착각하는 이단종교도 “화”가 있을 것이다. 성도를 ‘교인의 숫자’로 끌어모으는 것은 영혼을 상품목록에 추가하는 자본주의 사상의 변질이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미운물건의 판매자들이다.
앗수르는 하나님이 사용하는 심판의 도구이며, 채찍이며, 몽둥이다. 사랑하는 자식인 이스라엘이 말을 듣지 않으니, 하나님은 이방민족에게 권한을 줘서 때리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핍박하고, 약탈하고, 그 뜻을 반역했다. 앗수르는 하나님을 모르면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다. 제국처럼 나라가 강성해지니, 스스로 교만해진다. 이단교회와 앗수르가 무엇이 다를까? 이단교회는 결국 기독교를 견책하고, 십자가 복음을 깨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다. 때가 되면, 앗수르처럼 멸망당할 것이다. 이단교회가 멸망당하지 않으려면, 방법은 ‘십자가 복음’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앗수르는 군사력이 강성해서 주변국가를 점령한 것이 맞다. 그러나, 근본은 하나님께서 허락해서 그러한 승리도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앗수르는 결국 전기톱에 썰리듯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를 받는다. 10장 33절에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꺽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그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쇠로 그 빽빽한 숲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고 했다. 앗수르가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지 못하니, 견책의 도구 역할이 끝나므로 ‘토사구팽’(兎死狗烹)된 것이다.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은 토사구팽하신다. 하나님이 버리시면, 개인도 단체도 국가도 멸망한다. 오직 하나님을 붙들어야한다.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곧 ‘십자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