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그대를 읽게 하세요”라고 목사님이 권면했다. 얼핏, 익히 알던 문장같은데, 주어가 ‘성경’이다. 성경이 사람을 읽다니!! 말씀이 인생을 읽는다. 성경 독서습관이 깊어지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충분한 시간과 마음과 여유를 가지고 성경과 대화를 나누듯 그렇게 들여다본다. (나는 ‘중동의 눈을 통한 예수’의 책을 주교재로 삼고 있다.)
오늘은 5월 28일,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의 챕터 28(긍휼히 여기는 고용주 비유)을 읽었다.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주인 비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는 포도원 비유만 다루는데, 마태복음 19장과 연결해서 보면 내용이 보다 확실해진다. 부자 청년이 찾아와서 돌아갔고, ‘구원의 가치’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따지듯 “무엇을 얻느냐”고 묻는다.
이 대목은 포도원 비유에서 새벽 6시에 일한 품꾼들의 노조위원장이 주인에게 ‘임금협상’을 하는 장면과 닮아있다. 베드로와 그 제자들에게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듯, 새벽부터 일한 품꾼들에게도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포도원 비유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자청년이 떠난 후, 예수님은 ‘구원’에 대해 말씀했다. 포도원 비유는 ‘구원과 영생’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뜻한다. 얼핏 보기엔, 품꾼들의 임금협상과 불만이 중요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중심부에는 ‘품삯을 주라“고 했다. 그 부분이 핵심이다. 포도원 주인은 왜 품꾼들에게 똑같이 ’구원의 품삯‘을 동일하게 줬을까? 늦게 오든, 일찍 오든, 모두 동일한 품삯을 받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며, 무한한 자비다.
주인의 뜻은 새벽 6시에 계약한 사람들과 동일하게 품삯을 줬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정의인가!! 2천년전에 예수님은 하나님과 십자가로서 언약을 맺었다. 이제, 믿는 성도는 십자가 언약을 통해서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 그 언약을 동일하게 받게 된다. 새벽 6시는 3년의 공생애 기간과 AD70년까지 극심하게 힘들던 시기, AD313년까지 카타콤의 시기일 것이다. 지금은 오후 3시 또는 5시, 또는 5시 50분 정도의 기간일 수도 있다. 10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품삯을 주실 것이다. 나는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비유가 크게 위로가 되었다.